진주 선비가 쓴 간병일기
진주 선비가 쓴 간병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12.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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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문천각 사서)
이정희

효자가 부모 간병을 위해 대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수혈한 이야기가 많이 전한다.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서 살다 간 습정재 하익범(1767~1815)이 쓴 아버지 하진태의 간병일기에서 그 실체를 잘 확인할 수 있다.

1791년 10월 13일 아침. 80세인 할머니가 병이 나자 아버지의 간병이 시작된다. 하익범은 아버지가 간병하는 모습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기록이 바로 아버지가 할머니 약시중 들 때의 일기인 ‘가대인시탕시일기(家大人侍湯時日記)’로 ‘습정재집’에 전한다. 분량은 2400여 자에 달한다.

“(10월 21일) 할머니께서 운명하실 정도로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아버지께서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을 잘랐다. 처음 잘랐을 때 피가 나오지 않자 다시 자르니 피가 조금 흘러 나왔다. 세 번을 자른 뒤에야 선혈이 세 곳에서 펑펑 솟아져 나왔다. 피를 미음 그릇에 가득 채워 할머니 목구멍으로 남김없이 부어 드시게 하였다. 얼마 후에 몸에 차츰 온기가 돌아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또 아버지는 할머니 대변의 맛을 보시었다. 썩은 기름 찌꺼기와도 같아서 전혀 냄새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인삼 세 근을 넣어 끓인 미음을 드시게 하였다.”

아버지의 간병은 12월 3일까지 50여일 동안 계속됐다. 아버지의 지극한 정성과 간병으로 할머니의 병이 서서히 호전되기 시작했다. 단목마을 주민은 하진태의 효행을 진주목사에게 보고했다. 또 도내 선비들은 진주목사, 경상감사, 암행어사에게 30차례에 걸쳐 하진태의 효행 정려를 청원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00년만인 1891년에 이르러 고종은 하진태에게 효자 정려와 조봉대부 동몽교관의 품계를 내렸다. 1892년에는 마을 입구에 정려가 세워졌다. 효자 정려는 고을 사람들이 효자의 효행에 감동해 관아에 보고하고, 고을 선비의 공론에 의해 청원이 되고, 관리가 그 사실을 확인, 왕에게 보고하면 국가가 최종 공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이 일기는 아버지가 할머니의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살피는 모습, 단지로 수혈하는 모습, 온갖 약제를 구해 보양했으나 병이 호전되지 않자 부친이 할머니의 목숨을 대신하게 해 달라고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는 아버지의 정성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진주선비의 간병일기를 통해 진정한 효성이 어떠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문천각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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