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하 (경남과기대 학보사 편집국장)
작년 12월, 전역과 동시에 신문사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있었기에 교내 신문사 편집국장을 덥석 맡게 됐다. 내가 입대하기 전만 해도 신문사에는 사람이 아무리 없어도 10명 정도는 있었는데, 내가 후배에게 지금 남아있는 인원을 물어보니 0명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럼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다는 소리인가?’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맞았다. 사람은 나 혼자였다.
3월 복학하자마자 일단 신문사 부원을 모집하러 다녔다. 학교 게시판, 학과 건물마다 포스터를 붙이며 홍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6명이 모였고 그 인원으로 바로 첫 번째 신문을 발간했다. 처음 온 6명이 신문을 만드니 서툴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신문은 너무 부끄러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놈의 오타가 너무도 많았다. 수정한다고 했는데도 오타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계속 나왔다. 주간 교수님과 간사님에게도 오타가 너무 많다며 혼이 났었다.
물론 지금은 오타가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줄었고 내용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얼마 전에 낸 종강호에서도 또 오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놈의 오타와의 인연은 언제쯤 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편집국장을 하면서 경남일보에 여러 칼럼을 적었다. 처음 칼럼을 적고 난 뒤, 다른 대학의 편집국장들은 어떻게 적었는지 궁금해서 한번 읽어봤다. 나는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정말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글이 마치 어른이 쓴 글 같다면 내가 쓴 글은 마치 어린아이가 두서없이 적은 것 같았다. 내가 쓴 글 중에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적을 수 있을까?’라는 칼럼이 있는데 정말 모순되는 것 같아 웃음만 나왔다.
올해는 생각지도 못한 대학신문사 편집국장을 맡게 되면서 정말 정신없이 한 해를 보냈다. 많은 시간을 학업과 취업이 아니라 신문사에 투자했기에 어떤 사람은 시간을 헛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한 해였다. 스스로 한 해를 생각하기에 잘 보냈다고 생각하면 된 게 아닐까. 얼마 남지 않은 한 해가 내년의 후회가 되지 않게 잘 보내길 바란다.
3월 복학하자마자 일단 신문사 부원을 모집하러 다녔다. 학교 게시판, 학과 건물마다 포스터를 붙이며 홍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6명이 모였고 그 인원으로 바로 첫 번째 신문을 발간했다. 처음 온 6명이 신문을 만드니 서툴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신문은 너무 부끄러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놈의 오타가 너무도 많았다. 수정한다고 했는데도 오타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계속 나왔다. 주간 교수님과 간사님에게도 오타가 너무 많다며 혼이 났었다.
물론 지금은 오타가 다른 사람이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줄었고 내용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얼마 전에 낸 종강호에서도 또 오타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놈의 오타와의 인연은 언제쯤 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편집국장을 하면서 경남일보에 여러 칼럼을 적었다. 처음 칼럼을 적고 난 뒤, 다른 대학의 편집국장들은 어떻게 적었는지 궁금해서 한번 읽어봤다. 나는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정말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글이 마치 어른이 쓴 글 같다면 내가 쓴 글은 마치 어린아이가 두서없이 적은 것 같았다. 내가 쓴 글 중에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적을 수 있을까?’라는 칼럼이 있는데 정말 모순되는 것 같아 웃음만 나왔다.
올해는 생각지도 못한 대학신문사 편집국장을 맡게 되면서 정말 정신없이 한 해를 보냈다. 많은 시간을 학업과 취업이 아니라 신문사에 투자했기에 어떤 사람은 시간을 헛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한 해였다. 스스로 한 해를 생각하기에 잘 보냈다고 생각하면 된 게 아닐까. 얼마 남지 않은 한 해가 내년의 후회가 되지 않게 잘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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