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철거되고 부서진 김구선생 친필 충무공 시비
[경일포럼] 철거되고 부서진 김구선생 친필 충무공 시비
  • 경남일보
  • 승인 2015.12.1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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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지난 8월 진해 해군사관학교 입구에 있는 남원로터리에 가보았더니 창원시 도시재생과에서 에코뮤지엄사업의 일환으로 한창 공사를 하고 있었다. 중원로터리 쪽에서 바라보니 시야가 훤해지면서 로터리 가운데 있는 비석이 잘 보였다. 공사하기 전에도 제자리에 있긴 했지만 횡단보도가 없는 외로운 섬이어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충무공의 진중음(陳中吟)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백범이 어려운 시기에 애송하던 시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김구 선생의 글씨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誓海魚龍動, 盟山艸木知’ 열 글자에는 진지함과 철저함이 배어 있었다. 문득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할 때, 임금의 피란소식을 듣고 나라의 앞날 근심과 충혼을 담은 우국 한시의 한 구절을 비석에 새긴 김구 선생의 마음이 어떠했을지가 궁금했다. 도대체 바다에 무얼 선서하고, 산에 무얼 맹세했을까.

나는 입석비의 아래위를 몇 번이나 훑어 보았다. 그러던 중 비석의 윗부분에 서너개의 조각을 짜맞추어 놓은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제 조각도 있고 엉뚱한 걸로 땜질해 놓기도 했다. 그동안 글씨와 시를 읽느라고 미처 부서진 것을 눈여겨보지 못했던 것이다. 도대체 누가, 왜 시비를 부수었을까? 또 누가 깨진 화강암을 시멘트로 붙여 놓은 것일까? 향토사학자 황정덕 선생이 2007년에 펴낸 ‘우리고장 문화유산’ 337쪽에는 1947년에 북원로터리에 시비를 세웠는데 “(이승만 대통령이)…오가는 길가에 북원광장이 있고 거기에는 김구 주석 친필의 시비가 서 있으니 관심을 보였다. 이것을 눈치챈 어느 해군 장성이 시비를 들어내어 진해역전의 숲속으로 내동댕이쳐 버렸다. 이래서 이 시비는 윗 부분이 부러진 채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군항마을역사관 해설 자료집’에는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어느 정신없는 작자가 과잉 충성한다고 정으로 쪼아 윗부분을 깨어서 벌판에 버린 것”이라고 적혀 있다. 한편 1984년 진해시교육청이 펴낸 ‘향토교육자료’ 91쪽에는 “좌익계에 의해 파손되어 방치되다가”라고 짤막하게 기록돼 있다.

하여튼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한 1946년부터 시비가 세워진 1947년과 철거시기로 추정되는 1951년까지 5년의 진해 현대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만약 진해시사(1987년)와 우리고장 문화유산(2007년)에 기록된 것처럼 애초 북원로터리에 세워졌다면 충무공 동상 제작을 위한 1951년의 정초식(定礎式)까지 불과 4년 정도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는 진해역 창고에 방치 혹은 보관돼 있었던 시비를 4·19 이후에 찾아서 현재의 남원로터리에 옮겨 세웠다. 시비 설명자료에는 ‘뜻있는 사람들’이라고 적혀 있는데, 누구일까? 현재 군항마을역사관에는 1946년 김구 선생이 진해지역 유지들 10여명과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혹시나 이분들이 옮긴 것일까. 주민 중에는 70년대초 남원로터리에는 2개의 커다란 닻이 놓여져 있었다고 기억하는 분도 있다. 만약 70년대에 옮겨 세웠다면 무려 20여년의 세월동안 진해역 창고에 있었던 셈이다. 모든 사람이 잊어버리기에 충분한 세월인데 그분들은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 잊지 않고 옮겨 세웠던 것이다.

비석의 측면에는 대한민국 29년 8월 15일 김구라고 음각돼 있는데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원년으로 보면 1947년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시비가 세워진 지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1949년 6월 26일, 끝까지 단독정부 수립을 몸으로 막아보고자 했던 김구 선생은 나라를 지켜야 할 육군 소위의 총탄에 맞았다.

전점석 (창원YMCA 명예총장) 경일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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