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만 가지고 살다 본전은 물려주어야
이자만 가지고 살다 본전은 물려주어야
  • 경남일보
  • 승인 2015.12.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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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무 (한국작가회의 경남지회장)
하아무
우리의 조상들은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노래했다. 요즘 같은 때에야 어림없는 소리라 일축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나름대로 수긍하는 이들도 적지 않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나물 먹고 물 마시고 만족해 하는 이들은 극소수인 것도 사실이다. 세상은 바야흐로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가게마다 물건이 넘쳐나고 먹을거리도 지천이다.

예전에는 모자라서 문제였지만 요즘처럼 넘치는 것도 문제다. 많으면 썩고, 비도 많이 오면 홍수가 나고, 영양도 지나치면 사람을 죽게 한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영양 과다로 인한 질병에 의해 고통 받고 죽어간다.

생전 직접 옷 해입고 직접 텃밭에 작물을 심어 먹었던 박경리 선생도 “넘친다는 것은 결국 고갈을 초래할 것이며 또 우리에게 물질적 현상보다 먼저 오는 것이 정신적 현상”이라고 전제하고 “정신적 황폐가 지구를 고갈 지경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빈(淸貧)이 아니면 인류는 구제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땅이란 우리가 잠시 빌려서 쓰는 것인데, 그 땅에 화학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무분별하게 살포하다 보면 땅심을 죽여 본전마저 까먹게 된다. 비료나 농약 대신 퇴비를 주고 정성을 쏟아 땅심을 북돋워야 한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빌린 본전을 까먹지 말고 그 이자만 가지고 살다가 본전은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이 박경리 선생의 ‘본전론’이며 ‘생명사상’이다.

주장하는 이도 많고, 이제 웬만한 이들 중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아는 데서 끝나버리고 마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쓰면서 본전을 까먹고 있는 중이다.

몇 해 전 오스트리아의 한 백만장자가 부(富) 때문에 자신이 불행해졌다는 것을 깨닫고 전재산을 모두 기부해 화제가 되었다. 재산을 팔면서 자유를 느꼈다는 그는 “더 많은 부와 사치가 곧 더 많은 행복을 의미한다고 오랫동안 믿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돈은 역효과를 낳고 행복이 오는 것을 막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다.

살아간다는 일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날씨는 차지만 마음만은 느긋하다.
 
하아무 (한국작가회의 경남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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