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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76)호구산 용문사를 찾아서바다를 끼고 산 노인의 이야기가 달고도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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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2  21: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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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강만 석방렴

일에 쫓기면 옆이 안 보이고 돈에 쫓기면 앞이 안 보이고 욕망에 쫓기면 뒤가 안 보이는 것이 범부들의 삶이다.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조급함이 은근하게 목줄을 죄어들어 차라리 바닷바람이라도 쐬며 한 해 동안 헝클어지고 일그러진 상념들을 일어낼 요량으로 호구산 용문사를 찾아서 집을 나섰다.

남해고속도로 사천 요금소를 나와 삼천포항을 향해 사천읍을 벗어나 남해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를 거침없이 달려 각산터널을 빠져나가니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위로 현수교인 삼천포대교와 아취형의 초양대교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바다풍경에 가슴이 뚫린다.

삼천포대교에서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바다에는 띄엄띄엄한 죽방렴이 삼각형을 그리며 물살을 일으킨다.

삼천포항에서 모개섬까지의 삼천포대교를 시작으로 초양도까지의 초양대교, 늑도까지의 늑도대교를 차례로 지나 창선대교를 건너서면 창선도이다.

삼동면의 자족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한참 지나, 무림사거리의 이동교차로에서 남해대로로 올라서서 상주방향으로 2~3분 거리의 신전 삼거리에 닿자, 용문사 안내판이 우회전을 하래서 야트막한 비탈의 고갯마루에 오르니 망망대해로 펼쳐지는 바다의 발끝아래에는 앵강만이 오목하게 오지랖을 파고든다.

호구산과 금산이 나란히 손을 잡은 좌우로, 천황산 끝자락과 응봉산 끝자락이 해안선의 땅끝이 되어 마주보며 관문을 지키고, 봉긋하게 작은 섬 하나가 오목한 앵갱만의 들머리를 지키고 있다. 비보의 숲이라기보다는 해풍을 막으려는 방풍림인 뜻한 신전숲이, 자잘한 자갈과 모래밭의 해변을 아늑하게 보듬었다.

숲으로 내려섰다. 따뜻한 남쪽의 끝자락이라서 일까, 해변의 추억을 못 잊어서 일까, 단풍이 가랑잎 되어 떠나지를 못하고 성글어진 가지에서 옛 생각에 서럽다. 기다란 나무의자에 앉은 백발이 고운 할머니께 말붙임을 해봤다. “저기 바다 가운데 반달같이 쌓은 돌담장이 독살 입니까?” “ 대나무를 둘러치면 죽방렴이고 저 건 돌로 쌓아서 석방렴이라오” 짧아도 긴 순간을 빤히 보시더니 옆에 앉으라며 손바닥으로 의자를 두들기며 일러 주신다.

“많이 잡힐까요?” “오나가나 힘센 놈들은 다 빠져나가고 잔챙이만 잡혀” 가슴이 철렁 했다.

어망이 아니라 법망의 현실을 정 조준하여 날린 화살이다.

노인이 죽으면 박물관 하나가 불탄 것과 같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하며 한참을 나눈 이야기 끝의 할머니는 얼굴에 화색을 띄우고 “우리 집에 가면 유자차도 있는데… 쓸 만큼만 따고 그냥 뒀어… 따가도 되는데…” “ 아프지 마셔요, 유자차 잘 마시고 갑니다.” 할머니가 흔들어 주는 지팡이의 전송을 받으며 가던 길로 돌아섰다.

미국도 아닌 곳에 미국마을이 있었다. 하기야 독일마을도 있었기에 낯설지 않은 미국마을의 안길로 이어지는 용문사 길로 접어들었다. 가로수로 늘어선 낙엽송의 솔가리가 노랗게 길을 덮었다. 마을 끄트머리에 말쑥하게 단장된 주차장이 3단으로 나뉘어져서 휑하니 비어져 있는데 때때로 찾는 이들이 만만찮은지 꽤나 널따랗다. 주차장 위로 축을 쌓아 만든 상단에 하얀 화강암의 선비석상이 바다를 굽어보고 섰다. 부르는 듯이 다가갔다. 서포 김만중선생의 동상이다. 유건 비슷한 네모진 건을 쓰고 도포차림에 지팡이를 짚고 서셨는데 바라다보는 곳이 앵강만으로 들어오는 먼 들머리의 봉긋한 작의 섬 ‘노도’이다. 금산의 자드락인 진등의 끝자락 백련항에서 건너뛰면 닿을 듯이 가까운 섬이다. 조선조 숙종의 비 희빈 장씨의 파란의 소용돌이에서 선생께서 유배를 와서 한과 분을 삭이며 ‘구운몽’과 ‘사씨남정기’그리고 한글예찬론의 ‘서포만필’을 남기시고 생을 마감한 노도! 유배문학의 꽃으로 승화된 애달픈 섬이다.

금의관복 벗어놓고 무명도포 웬 말이오

눈물로 먹을 갈아 글을 짓던 노도 섬을

용문사 옛 가던 길에서 바라보니 서럽네.

 
   
▲ 김만중선생이 바라보는 노도


희빈 장씨와 사씨남정기의 첩실 교씨를 대조하며 잎은 졌어도 빼곡한 숲이 우거진 용문사 계곡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우람한 바윗돌이 뒤엉켜서 덩치자랑을 하는 계곡은 콸콸거리는 물소리가 겨울답잖게 청량하다.

나뭇가지 새로 어른거리는 용문사가 저만치인데 길섶의 언덕진 둔덕에는 단아하게 담장을 두르고 여남은 기의 승탑인 부도가 상하의 단을 나뉘어서 나란히 서있다. 세월의 흔적은 돌인들 어쩌랴 검버섯이 희끗희끗 끼었다. 달 항아리 모양도 있고 키가 큰 항아리 모양도 있어 제 각각인데 음양각의 새김이 곱기도 하다. 산자의 마지막 공경심일까, 들고 나며 유훈과 유지를 되새기려 함일까, 지나는 걸음마다 멈추게 하고 손 모아서 합장을 저절로 하게 한다.

포대화상을 모신 작은 공덕전 옆으로 마음을 씻고 건너라는 세심교를 지나면 불법에 귀의한 중생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인 사대천왕이 검문을 받으라며 퉁방울 같은 눈을 부라리고 울퉁불퉁한 근육질로 장신의 골격을 자랑하며 창검을 들고 양쪽에서 지킨다.

메통 같은 장딴지와 돌덩이 같은 발로 양반상과 선비상을 지긋하게 밟고 있어 악귀를 밟고 있는 여느 사찰의 사천왕과는 특이하고 이름도 천왕각인데 경남도문화자자료 150호란다. 승유억불에 대한 반항이었을까, 탐관오리나 세도가에 대한 저항이었을까, 알 수는 없으나 천왕각을 거쳐서 돌계단 위로 우람한 2층 문루인 경남도 문화재자료 394호인 봉서루를 통과해야 보물제 1849호인 대웅전을 마주 한다. 좌우로 탐지당과 적묵당을 거느린 대웅전의 팔작지붕이 건물에 비해 웅장하게 구성되어 장중함을 더하는데 보머리에는 용을 장식하여 공포의 화려함이 극치를 이룬다. 법당 안으로 들어서자 천정의 공포구조가 놀랍게도 웅장하고 대들보를 걸타고 마주보는 용의 조각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움켜진 여의주가 어스러질 것 같이 생동감이 넘쳐난다. 임진란에는 불에 탔어도 승군의 양성으로 ‘수국사’로도 불리어졌고 조선후기에는 호국사찰로 보호를 받았다니 사찰의 중건에도 왕실에 소속된 장인들의 솜씨가 차원 높은 예술적 경지를 이룬 것인지 빼어나게 화려하고 장엄하고 장중하다. 삼존불은 생각보다 작은 등신불이고 불벽 뒤에는 보물제 1446호인 쾌불탱이 함속에 보존되어 야외법회를 기다리며 국태민안을 기원하고 계시다. 헌향의 예를 갖추고 법당문을 나서니 ‘봉서루’ 옆으로 ‘무인 찻집’이라는 당호의 편액을 걸고, 고단한 중생들이 언제나 쉬어갈 수 있게 원목의 차탁들을 정갈하게 마련한 별채에서, 장작불이 타는 벽난로의 연기는 중생의 번뇌를 사르는 향불의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린다.



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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