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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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훈 (경상대학교 총장 직무대리, 철학과 교수)

칼 만하임을 다시 생각하며

내가 보기에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양극화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다. 여기서 절대주의란 시대와 문화를 관통하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사실, 진리, 가치 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반면에 상대주의란 모든 지식과 가치는 세대, 사회계층, 문화적 배경 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만일 어떤 이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사는 반드시 단 하나의 올바른 관점에서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거나, 대학구성원들의 직선제 총장 선출 방식만이 대학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 올바른 방안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내가 말하는 의미의 절대주의자이다. 반면에 만일 어떤 이가 역사적 사실은 여러 가지 관점에 따라서 해석되고 구성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역사적 지식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거나, 우리와 역사적ㆍ문화적 배경이 다른 미국의 대학에서 채택하고 있는 간선제는 우리나라 대학에서 적용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상대주의자이다.

절대주의자들과 상대주의자들은 서로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 현상은 마치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말했던 패러다임의 대립과 유사하다. 패러다임이 다르면 의사소통이 단절된다. 요즘 정치권에서 여야가 싸우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총장 선출 방식을 두고 대학과 정부가 갈등하는 상황을 보아도 그런 점이 보인다.

이러한 사회 현상을 바라보면서 나는 헝가리 태생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칼 만하임을 떠올린다. 그는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대립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한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적 저작인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만하임은 우리의 지식과 신념이 사회 계급, 장소, 세대에 의해서 제약되거나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만하임은 상대주의 역시 만족스럽지 않은 입장으로 여겼다. 왜냐하면 상대주의는 각기 다른 믿음과 가치를 가진 사회집단과 문화권이 합리적으로 서로 소통하고 대화할 가능성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주의에서 귀결되는 것은 비합리주의이거나 회의주의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는가? 나는 이 대안을 찾는 일이 이 시대, 우리 사회에서 철학을 비롯한 인문-사회과학에 주어진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작게는 우리 대학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글로벌한 차원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만하임은 상대주의에 대한 처방으로 관계주의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먼저 사람들이 시간-공간적인 차이, 사회적 위치의 차이에 따라서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할 것을 권고한다. 상대주의와 달리, 관계주의는 각기 상대적인 가치와 신념이 불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님을 간파하는 입장이다. 다른 관점을 가진 문화 집단들은 스스로도 생성하고 변화할 뿐만 아니라, 접촉을 통해서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각 문화가 가진 가치와 신념은 끊임없이 변할 수 있다. 때문에 두 문화 혹은 사회집단이 비합리적인 대립과 충돌을 피하고자 한다면, 서로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하고, 어떻게든 서로 접촉하고, 부딪치고, 깨어져야 한다. 그리고 제3의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대립적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만하임의 메시지인 것 같다.

 

경상대 정병훈 총장직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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