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77) 금원산을 찾아서
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77) 금원산을 찾아서
  • 경남일보
  • 승인 2016.01.0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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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원숭이를 찾아 나선 가벼운 발걸음
▲ 문바위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해의 소망을 빈다. 해마다 반복되는 새해의 첫 출발이다. 그러고도 미덥지 않아 이름 난 기도처를 찾기도 한다. 그래 봐도 해마다 그게 그것 같아서 어디 영험한 곳이 없나하고 남의 소리에 귀기울이기도 하는데 병신년 새해의 소원을 어디에 대고 빌어야 할지 찾는다면 딱 들어맞는 곳이 있다.

이번 길은 ‘발길 닿는 대로’ 가 아니라 신년 초 경건한 마음으로 황금원숭이를 찾아 나선 길이다.

35번 고속도로의 지곡 요금소를 나와 24번 도로를 따라 안의로 내려섰다. 얼핏 보더라도 광풍루가 보고 싶어서다. 안의의 들머리 강변 옆에 우뚝 솟은 광풍루에서 백세지사 일두 정여창선생께서 근엄하게 내려다보고 계실 것만 같아 지나는 길이면 언제나 발길을 멈췄던 곳이다. 이번 길에는 마음을 둔 곳이 따로 있어 스쳐가며 힐끔 보았는데 2층의 기둥마다 전에 없던 주련이 걸려 있고 단청 또한 옛 모습과 달라 눈에 설다.

광풍루를 지나 금천교차로에서 10km 남짓한 마리삼거리에서 좌회전해 다시 장풍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니까 위천천 물가에 꽤나 널따란 주차장까지 마련하고 여남은 그루의 등이 굽고 휘어진 노송의 그늘아래에 우람한 바윗돌이 옹기옹기 모여앉아 쉬어가라 붙잡는다. 노송의 가지 끝에 달을 걸어 불 밝히고 비파 뜯고 시를 읊던 신선들의 별서일까, 커다란 바위에는 ‘원학동’이라 새겼으니 원숭이와 학이 노는 원학의 동천인가, 허허벌판 한 가운데 노송도의 그림 한 폭 누구의 소작일까! 풍광에 녹아서 선채로 돌 될까봐 가던 길을 재촉하여 위천면 사무소 앞을 지나니까 ‘금원산 자연휴양림’을 알리는 안내판이 좌회전을 하라 하여 마을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기백산과 금원산이 나란히 마주보며 높고 낮은 준봉들을 우쭐우쭐 앞세우고 울퉁불퉁한 등줄기가 다부지게 뻗어내려 다정하게 맞모아진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추녀를 맞댄 강남마을입구에 ‘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을 알리는 안내판이 마을표석 앞에서 다소곳이 나와 섰다. 금원산 찾아들며 들머리의 석불에 예를 올리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도 좋을 같아서 고분고분 마을안길로 들어섰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마을보다 지형이 훨씬 낮은 좁다란 들판에 작은 주차장을 마련하고 잔디가 곱게 깔린 널따란 빈터에 비각 같은 건물 하나가 홀로 섰다.

사방 단칸인데도 단청을 짙게 입힌 맞배지붕의 높이가 만만찮으며 붉은 빛깔의 기둥사이로 홍살을 둘러치고 정면에는 배례석까지 마련한 석조여래입상을 모신 불당이다. 합장의 예부터 얼른 올리고 다가섰다.

 
▲ 가섭사지 마애삼존불


발끝에서 천정까지의 엄청난 크기의 광배를 등에 붙인 불상은 세월의 무게가 버거웠을까 얼룩진 역사의 상처일까. 모도 닳고 면도 닳아 윤기조차 없어도 표정은 윤곽만으로도 확연하여 자비로운 미소가 사르르 배어난다. 어깨를 감싸고 발끝까지 드리워진 옷자락의 주름은 물결이 여울지듯 흘러내리고 살포시 밟고 선 연화좌대는 연방이라도 둥실 떠오를 것만 같다. 불상과 광배가 하나의 돌인데도 광배의 가장자리 두께는 한 뼘이 채 안 되게 얄브스름한 연꽃잎으로 날렵하고 산뜻하다. 오른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덜어주는 시무외인을, 왼손은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여원인을 표현한 것이라고 안내판이 일러줘서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으나 얼른 소원이 생각나지 않아서 ‘부처님은 아시겠지’ 하고 꾸벅꾸벅 절만 하고 발길을 돌렸다.

매표소가 가마득한데 안내원이 차를 세우란다. 왕복 2차선 도로의 한 쪽은 주차된 차량들이 빈틈없이 이어졌다. ‘금원산 얼음축제’ 기간임을 깜빡했으니 걷기로 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계곡은 온통 얼음의 천국이다. 선녀들의 하강을 위해 선녀탕만은 얼지 않고 명경지수인데 바위며 나무에까지 물을 뿌려서 얼음 옷을 하얗게 입혀서 또 다른 장관이다. 쌍으로 만든 황금원숭이는 나란하게 쪼그려 앉은 채 사람들에 들러 싸여 사진 찍기에 넋이 빠졌고 멀리 원숭이 바위인 원암은 금원산 중턱에서 길손을 반긴다. 황금원숭이의 광채가 중국 궁궐에서 눈이 부시어 사신을 보내 원숭이를 바위굴에 가뒀다는 전설과 황금원숭이가 너무 날뛰어서 어느 도사가 바위굴에 가뒀다고도하여 원숭이 바위라 한다는 원암에서 올해는 황금원숭이가 박차고 나와 이제는 어딘가에서 국태민안을 빌고 있으리라.

그럴만한 곳이 있기에 발길을 재촉하여 얼음축제장을 벗어나 잔설이 깔린 깊은 골짜기로 향했다.

포근한 날씨에 얼었던 계곡물이 녹아서 건널 곳을 찾아 머뭇거리는데 느닷없이 골짜기를 가득 메운 커다란 바윗돌이 덮칠 듯이 눈앞을 막아선다. 집채만 한 게 아니라 산등성이만 한 덩치다. 웅장하고 장엄하다. 럭비공을 바닥에 놓아둔 자세인데 살찐 돼지의 몸통처럼 두루뭉술하다. 단일 바위로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바위라며 ‘문바위’라고 안내판이 일러준다. 국내에서 제일 크다니 예사롭지 않아서 무턱대고 합장하여 꾸벅꾸벅 절을 했다. 참으로 절을 헤프게 한다할지 모르지만 신년 초에 시줏돈 안 놓고 공짜로 하는 절인데 헤프면 어떠냐하고 대놓고 해댔다. 그러고는 아무리 둘러봐도 문이 없는데 어째서 문바위라 했는지를 알아냈으니 절값을 톡톡히 받은 셈이다.

문바위의 문으로 들어갔다. 문바위 안쪽 면은 아찔한 높이에 널따란 절벽인데 금이 간곳 하나 없이 대패로 깎는 듯이 수직으로 반듯한데 불상도 이름도 새긴 곳이 없으니 어쩐 일인가! 태초의 모습대로 남겨둬서 너무도 고마운 일이지만 바윗돌만 보면 불상을 새기고 암벽만 보면 이름 파기를 그토록 좋아하는 그들이 골백번도 더 났을 안달을 어떻게 참았을까. 영검이 없고서야 이리도 깨끗하랴!

마음을 다잡고 뒤도 옆도 안 보고 앞만 보고 걸었다. 웅장한 바위들이 서로를 기댄 채로 무덕무덕 모여서 내려다보고 있다. 돌계단은 바위틈 사이로 또 한 번 굽어지며 점점 가팔라지고 폭도 좁아져서 어깨가 양쪽으로 바위를 비빈다. 착각이 아니고서야 극락으로 인도될 주제가 아니지만 이러다 돌아 나올 수도 없는 극락으로 잘못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데 평평하고 널따란 바닥을 마련한 바위굴로 들어섰다. 향 내음이 그윽하다. 웅장한 바위가 ‘ㅅ’ 자 모양으로 기댄 석굴이다. 족히 예닐곱 평은 됨직하고 천정은 비스듬하게 한쪽으로 높이 솟았다. 촛불을 밝히고 향이 타는 얄팍한 돌판 위로, 바위의 한 면 전체를 보주형으로 파서 광배를 만들고 그 위에 도드라지게 새긴 삼존입상불은 선이 곱고 부드러워 근엄하고 자애롭다. 험 자국 하나 없이 완전한 모습으로 천년세월을 마다 않고 중생제도만을 위하여 오로지 자애자비에만 몰입하신 보물 제530호인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이시다.

신년소원을 빌며 헌향의 예를 갖추니 향불의 연기는 실낱같이 하늘거리며 사바세계를 향해 석굴 밖으로 가물가물 흩어진다.

 
금원산 얼음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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