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박오일의 여정
사박오일의 여정
  • 경남일보
  • 승인 2016.02.0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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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희 (시인·한국시조문학관 사무국장)
손영희

문우들 몇몇이 이박삼일 일정으로 제주도를 가게 됐다. 금요일 늦게 도착해 들뜬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웬걸, 아침부터 광풍을 동반한 눈이 오기 시작했다. 35년 만이란다. 우린 관광을 포기하고 티브이 뉴스를 보면서 눈이 그치길 기다렸다. 하지만 공항은 폐쇄됐고, 승객들이 몰리면서 공항이 난장판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깔고 잘 박스 한 장이 만원에 팔리고 택시는 10만원의 바가지요금을 요구한다는 등 승객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내용이 계속 방송됐다. 예약된 날짜가 지나자 우리도 초조해졌다. 항공사에선 특별기를 내어 예약된 날짜순으로 먼저 보내주겠다며 탑승시각 5시간 전에 문자로 알려주겠다고 한다.

월요일이 되자 밤 12시에서 1시 사이 떠나는 특별기 좌석을 배정해 줄테니 공항에 나와 수속을 하라는 문자가 왔다. 공항에는 이미 항공사별로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서 있었다. 5시간 줄을 서며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 바로 앞에서 준비된 항공기 좌석은 다 차 버렸고 화요일 오전 8시30분 진주나 부산이 아닌 김포로 가는 항공기를 배정받았다. 하룻밤을 지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대합실 한쪽에 매트와 담요를 구해 잠자리를 마련했다.

집에 와보니 주위 분들의 걱정이 대단했다. 어떻게 현장에 있었던 우리보다 그곳 사정을 세세하게 알고 있는지 놀라웠다. 물론 공항사정은 좋지 않았다. 저가 항공사의 대처능력 저하로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했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방송에서 말한 대로 한 장에 만원하는 박스는 없었고 거리사정으로 택시가 운행하지 못했을 뿐 바가지요금에 대한 내용도 과장된 것이 많았다.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불평 없이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었고 핸드폰 충전센터에서 무료 충전과 빵과 물을 나눠주고 한쪽에선 의사가 나와 진료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박삼일 만에 끝난 천재지변이 온 나라를 들끓게 한 것은 누구 책임일까. 천재지변에 대한 매뉴얼을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한 공항이나 재난본부, 편파보도에 적극적인 언론, 무능한 정부보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묵묵히 질서를 지켜준 그때 거기 있었던 모든 여행객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손영희 (시인·한국시조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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