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플러스 <137>거제 계룡산
명산 플러스 <137>거제 계룡산
  • 최창민
  • 승인 2016.02.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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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릉길을 오르는 명산 취재팀. 계룡산은 도시인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산과 암릉이 이어지는 매력적인 산이다.


거제포로수용소는 한국전쟁 중 발생한 북한·중공군 포로들을 집단수용하기위해 1951년 11월 만들었다.

당시 북한·중공군 포로는 13만2472명. 워낙 많다보니 이들 사이에서도 친공과 반공으로 갈라져 대립하면서 목숨을 건 유혈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급기야 1952년 5월에는 친공 포로들이 수용소장 프랜시스 도드 준장을 납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 달 후 강제 진압했지만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기위한 시설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거제도에 이 포로수용소를 내려다보고 있는 산이 계룡산이다. 그리고 이 산중에 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기위해 세운 계룡산통신대가 있다. 60여년이 지난 지금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뼈대만 남은채 위태롭게 서 있다. 이 모습은 바람이 부는 날 해질녘에 더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 일견 창틀사이로 떨어지는 낙조의 아름다운 풍경은 건물의 용도를 떠나 잔인한 일이다. 가끔 불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은 낡은 창문 가장자리 틈을 헤집어 파면서 기이한 소리를 낸다. 감시를 위한 시설인 만큼 거제포로수용소가 제일 잘 보인다.

지금은 거제의 진산으로 변모했다. 거제도의 중앙에 있으면서 과거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시민들의 안식처가 돼주고 있다.

주능선을 등반할 때에는 도시의 산에서 볼수 없는 암릉지대와 억새지대를 번갈아 가면서 만날 수 있다. 일출, 석양, 노을, 낙조, 바람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산의 형상이 닭과 용처럼 생겼다고 해서 계룡산이다. 거제면과 옛 신현읍에 걸쳐 있는 높이 566m의 산으로 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최고봉 아래에 신라 화엄종의 개조(開祖) 의상이 수도하던 의상대라는 터가 남아 있으며 중턱에는 계룡사가 자리 잡고 있다.

 
▲ 계룡산 정상 태극기


▲등산로=거제공설운동장 주차장→거제공고정문→육교→임도갈림길→팔각정전망대→암릉지대→계룡산 정상→의상대→방송탑→통신대 잔해→543봉→고자산치 임도갈림길→거제시내 하산

▲오전 9시 40분, 거제공설운동장 뒤편 주차장이 들머리다. 암벽 훈련장 곁으로 5분정도 더 올라가면 거제공고 정문과 후문이 연이어 나온다.

후문 부근에서 큰길을 벗어나 밭도랑 길을 걷다가 해가 뜨는 방향에 우뚝 솟은 육교가 보이면 이를 기준 삼아 따라 가면된다. 이정표도 따로 있어 길 찾기는 수월하다. 육교는 삼동∼신현간 지방도로를 건널 수 있도록 설치한 것으로 주로 등산객이 이용한다. 육교 아래에는 차량이 바람을 일으키며 씽씽 오간다. 거제 시가지 일부와 고현항의 조선소, 그 뒤로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다. 다시 10여분 정도 오르면 샘터에 갈림길. 왼쪽이 계룡사, 오른쪽은 팔각정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공원벤치가 있는 휴식처 옆에 무덤도 같이 있다. 대개 사람들의 발길을 막기 위해 둘레석을 쌓기도 하고 턱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 무덤은 나무로 대충 경계를 만들었음에도 나름대로 봉분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산허리를 돌아가는 임도를 가로질러 오르면 팔각정전망대에 닿는다.

오전 10시 50분, 전망대에 서면 시야가 360도로 넓어진다. 바닷가 패각처럼 눈부시게 하얀빛을 내는 아파트단지, 주황색이 화려한 조선소의 타워·골리앗크레인, 그 뒤에 짙푸른 바다와 섬들이 강렬한 색조의 대비를 보여준다.

가시거리 100km가 될 정도의 맑은 날씨 덕에 북쪽 멀리 바다 건너 구름처럼, 혹은 손톱의 반달처럼 지리산이 보인다.
 
▲ 석림 속을 지나는 취재팀.



전망대를 뒤로 하고 정상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이제부터 암릉지대. 산정에 송전탑이 있어 이를 기준삼아 오르면 된다. 거친 바위틈 사이로 몸을 비틀어 지나고, 또 한두 고개를 넘어서면 억새지대다. 억새와 그 사잇길을 걸어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억새의 마력이다.



오전 11시 20분, 정상에 닿는다. 무학산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이곳에도 있다.

드넓은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의 잔치 다도해의 시원한 풍광이 펼쳐진다. 북으로 대금산, 동으로 옥녀봉, 남으로 가라산과 노자산, 서쪽에 산방산이 에둘러 있다.

정상에서부터는 더욱 성가시고 신경쓰이는 암릉의 연속이다. 고층 아파트 같은 큰 바위가 막아서는가하면 통천문 같은 구멍바위를 지날 때도 있다.

오전 11시 40분, 절터에 닿는다. 서기 640년 신라 화엄종의 개조인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곳, 의상대이다.

주변에 작은 대나무밭과 서너평 크기의 암자 터, 돌담이 오래 전 절이었음을 알려준다. 북쪽에 있는 큰 바위는 의상대사가 장기를 뒀다는 장기바위. 지금도 장기판의 선각 등 흔적이 남아 있다.

의상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이동통신안테나가 서 있는 방향으로 다시 길을 재촉한다. 이 구간에 계룡사를 거쳐 거제시청으로 바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오후 1시 50분, 통신시설과 방송탑을 넘어서면 발아래 곧바로 포로수용소의 통신대시설이다. 낡은데다 위험해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보기에 따라 그리스 고대 신전같기도 하고, 영국 런던 남서쪽에 있는 스톤헨지 같기도 하다.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 방치된 사물들은 무엇인가를 상상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 인간을 통제하기위해 만들어진 시설들이 세월이라는 시간을 만나면서 빛이 바래고 허물어져 이제는 풍경이 돼버렸다.

통신대 시설을 벗어나면 마지막 543봉이 기다린다. 성근 바위들이 등산로주변에 석림처럼 다가온다.

543봉 산 아래 고자산치다. 이곳에서부터 다시 억새와 잡목이 우거진 등산로. 암릉과 억새가 어울린 아름다운 산임을 실감할 수 있는 구간이다.

고자산치에는 쉼터가 마련돼 있고 임도가 가로지른다. 이곳에서 2km 더 진행하면 선자산이다. 사유지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판이 붙어 있다.


 

▲ 거제포로수용소 통신대 시설
 

 



고자산치의 전설은 사량도 옥녀봉 전설과 비슷하다. 초여름 어느 날 우애가 좋은 오누이가 계룡산 고개를 넘어 외갓집엘 가게 됐는데 산마루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면서 사단이 났다.

앞서가던 오빠가 뒤따르던 누이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비를 흠뻑 맞고 걸어오는 여동생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던 것. 얇고 하얀 옷이 비에 젖어 그 사이로 여성의 곡선미가 살짝 드러났다. 평소 허투루 봤었는데 이날따라 동생에게서 여자의 모습을 본 것이다. 잠시 이성을 잃었던 오빠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동생을 먼저 보냈다. 그리고 자책하며 칼로 자신의 고환을 찔러 자살했다. 이후 이 고개를 고자산치라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다.

오후 2시 33분, 취재팀은 고자산치에서 거제시내 쪽으로 하산한 뒤 거제포로수용소 앞을 지나 거제공설운동장으로 원점 회귀했다.

거제포로수용소는 당시 유엔군 사령부가 반공포로와 친공포로를 분리한 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조인 후 한 달간에 걸쳐 친공포로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면서 완전히 폐쇄됐다.

잔존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던 포로수용소 유적은 한국전쟁의 참상을 말해주는 민족역사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1983년 12월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됐다. 2002년 11월 유적공원화사업이 진행돼 현재 모습을 갖추고 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고현항 조선소와 아파트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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