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융합과 통섭: 환원주의와 비환원주의를 넘어서
[아침논단] 융합과 통섭: 환원주의와 비환원주의를 넘어서
  • 경남일보
  • 승인 2016.02.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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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훈 (경상대학교 총장직무대리, 철학과 교수)
최근 들어 융합과 창의성이 학계, 교육계, 그리고 산업계 등에서 두루 화두가 되어 있다. 각 대학에서 여러 주제의 융합연구회가 구성되는가 하면, 학교마다 융합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느라고 분주하다. 융합과 창의성이 이렇게 강조되는 데는 그럴 만한 학문적, 과학기술적, 문화적 배경이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부각되고 있는 용어 중 하나가 바로 ‘통섭’(統攝)이다.

‘통섭’은 본래 ‘consilience’의 번역어이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1998)을 번역하면서 “병렬적 수준의 통합이나 융합을 넘어서 새로운 이론을 찾으려는 범학문적 접근”을 의미한다는 뜻으로 ‘통섭’이란 말을 고안하였다. 그런데 그런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한 첫 번째 사람은 19세기 영국의 과학철학자 윌리엄 휴월(1794-1866)이다. 휴월에게 ‘consilience’는 마치 여러 지류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강을 이루듯이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창안함으로써 별개의 현상처럼 보이던 현상들을 하나의 원리에 포섭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윌슨이 말했던 consilience는 생물학적 개념의 우월성을 강조한 것으로서, 자연과학이 사회과학과 인문학으로 그 범위를 확장하여 세 영역을 한 데 묶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진화생물학의 개념과 방법으로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이고, 그 결과는 바로 사회생물학이다.

휴월의 통섭은 기존의 어떤 영역에 한정되는 개념을 가지고 각기 다른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환원적 통섭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윌슨이 말하는 통섭은 진화생물학의 개념으로 여러 현상들을 환원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환원적 통섭이라고 하겠다. 비환원적 통섭이 “서로 다른 요소들 또는 이론들이 한 데 모여 새로운 단위로 거듭남”을 의미한다면, 환원적 통섭은 “여러 요소들 또는 이론들이 기존의 한 요소나 이론으로 환원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윌슨의 환원적 통섭과 같이 하나의 학문을 기반으로 모든 학문을 통일하려는 시도에 대해 지적되는 가장 중요한 난점은 환원주의의 문제이다. 이것은 과연 도덕, 미학, 종교와 철학, 심리학 등 인간의 모든 활동을 진화생물학을 기반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통섭 개념이 주어져 있다. 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나는 우리가 통섭에 있어서 환원주의와 비환원주의의 대립을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원주의는 자연현상을 탐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입장이다. 한편 비환원주의는 문화의 의미와 지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맥락에 따라서 때로는 환원주의를, 또 때로는 비환원주의를 택할 필요가 있다.

스티븐 굴드(S. J. Gould)도 세계를 보는 방식을 하나로 환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스러운가를 묻는다. 자연의 진화와 문화의 변화 사이의 차이점을 무시한 채, 환원주의적 태도를 문화현상의 탐구에도 적용하려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보는 것 못지않게, 종교적 관점에서, 그리고 미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각각 의미 있다.
 
정병훈 (경상대학교 총장직무대리,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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