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많은 사람들의 단골 여행처 '거울바다'
◇아픔을 거풍하는 겨울바다
춥고 바람이 드센 날을 잡아 떠나는 겨울바다, 세상일이 아픔으로 깊어질수록 그 아픔의 깊이보다 더 깊고 넓은 겨울바다를 찾아 가슴 속 깊이 박힌 아픔의 옹이를 끄집어내어 차고 맑은 해풍에 거풍을 한다면 아픈 가슴엔 봄 들녘처럼 파릇파릇 새 순이 돋아날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 하나씩은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그 아픔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닿으면 뻥튀기처럼 되살아나 몸과 마음 모두가 아픔에 지배당할 때가 있다. 이 때, 망망대해인 겨울바다를 찾아 아픔의 이름이든 그리움의 이름을 불러보면 어떨까? 아픔을 안긴 사람의 이름이 ‘봄’이거나 ‘가을’이면 ‘봄아’, ‘가을아’라고 목놓아 부른다면 그 이름이 파도소리로 부서져 사라질 것이고, 그리움을 안긴 사람의 이름이 ‘여름’, ‘겨울’이면 ‘여름아’, ‘겨울아’라고 목청껏 부른다면 해풍과 함께 내 귓전에 만남이란 희망의 이름으로 되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망망대해가 그 아픔과 그리움을 모두 거두어 줄 것이다. 그래서 아픔이 많고 그리움이 깊은 사람들이 겨울바다를 찾는지도 모른다. 이번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18은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14코스를 탐방해서 겨울바다의 진수를 느끼고 싶었다. 특히 아픔 많은 사람, 그리움이 깊은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힐링여행이다.
해파랑길은 부산의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10개 구간 50개 코스로 이루어진 총 길이 770km로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탐방로이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함께 하다의 의미를 지닌 국어 조사인 ‘랑’이 합쳐진 것으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걷는 길’이란 의미이다. 50개의 코스 중, 구룡포항에서 호미곶 등대에 이르는 총 15.3km 거리의 해파랑길 14코스는 경관이 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대게와 과메기의 본고장 구룡포항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촬영지이고 일본인 가옥 거리는 아직 옛 풍경이 그대로 남아있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곳이기도 하며,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일출 명소인 호미곶으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진 해파랑길 코스다.
◇눈부시게 푸르른 ‘해파랑길’
◇상생의 손이 세상에 햇살을 펼치는 호미곶(虎尾串)
해파랑길은 가끔은 도로와 겹치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그리고 해안길로 갈 때도 표지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해안길을 걸어보니 표지판을 안 붙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느 길로 가든 해파랑길을 만나기 때문이다. 해변의 모랫길을 걷든, 자갈길을 걷든, 아니면 지름길로 가든, 에둘러서 가든 각각의 운치가 달랐고 느낌도 달랐다. 생각에 따라 단점이 장점으로 바뀜을 보고 우리의 삶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긍정적으로 보면 아픔도 미움도 아예 생겨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얻게 된 하루였다. 마을길, 도로, 해안길, 나무데크 등 4시간 남짓 걸어서 종착지인 호미곶에 도착하자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바닷물 속에 우뚝 내민 상생의 손이었다. 일출 명소로 널리 알려진 호미곶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바로 ‘상생의 손’이다. 1999년 12월에 새천년을 여는 시점에 맞추어 바다와 뭍에 각각 하나씩 세워놓았는데 바다에 돌출된 손은 오른손으로, 높이 8m나 되는 대형 조형물로 손가락을 넓고 강하게 펼침으로써 햇살의 이미지를 상징화한 작품이다. 이에 비해 새천년광장에 세워놓은 왼손은 오른손보다 훨씬 작은 높이 3m로써 햇살을 받아 포용하고 어우러지면서 오른손과 화합하는 새천년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새천년에는 국민 모두가 두 손을 마주잡고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를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리고 새천년광장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는데 바로 전국 최대의 가마솥이다. 지름 3.3m인 이 가마솥은 떡국 2만 명분을 끓일 수 있다고 한다.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의 해파랑길 14코스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을 감상하고, 마음 속에 응어리진 아픔을 망망대해에 퍼다버린 뒤 이곳 호미곶에 세워놓은 상생의 손 앞에서, 나에게 아픔을 준 사람과 상처를 받은 사람이 함께 떠오르는 해를 연상하면서 상생과 화합을 꿈꾸는 것도 참 좋을 듯하다. 거센 바람이 잦아든 자리, 따사로운 햇살이 가슴 속 깊이 박힌 옹이들을 눈 녹이듯 사라지게 한다면 이 또한 행복한 힐링의 순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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