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단상
귀촌 단상
  • 경남일보
  • 승인 2016.02.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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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희 (시인·한국시조문학관 사무국장)
손영희
삼년 전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진주 인근에 조그맣게 집을 짓고 정착했다.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서 새가 울고 산에는 온갖 약초와 산나물들이 지천이었다. 지인들을 초청해 자연식으로 집들이도 했다. 아파트에선 키울 수 없었던 야생화도 심고 과실나무도 사다 심었다. 전원생활에 대한 기대가 실현되고 있다는 만족감에 흥분되기도 했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이곳에 와서 보상을 받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여름이 오자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모기와 파리 때문에 힘들어졌고 거미는 집안 곳곳에 거미줄을 쳤다. 작은 벌레들은 방안까지 기어들어와 몸 이곳저곳을 물었다. 피부에 직접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얼굴은 금방 까매졌고 채소를 심어놓은 텃밭은 잡풀이 올라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여름 한철 지내고 보니 그동안 시골생활에 대해 무지했다는 낭패감이 몰려왔다.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 보게 되면서 원래 이곳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저절로 잘 자라는 나무와 풀,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벌레들, 그리고 지저귀는 새들까지, 이곳의 침입자는 바로 우리였던 것이다.

그들의 생활터전인 땅을 파헤쳐 콘크리트를 치고 잔디를 심고 울타리를 쳤다. 개척민들이 인디언 원주민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낸 것처럼 그들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았던 것이다. 자연을 훼손한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부터 방안으로 들어온 벌레들이 제 길을 찾아가도록 내버려두게 됐고, 한여름 더부룩하게 자라나는 잡초들도 무심히 보아 넘기게 됐다.

자연은 가만 내버려둬도 상생하면서 사계절을 보낸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열고 초록의 싹을 틔운다. 나무들은 새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벌레들은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키며 살아간다. 그런 자연 속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고 먹을 것을 얻고 삶의 풍요로움을 배운다. 자연의 이치를 알면 살아가는 게 훨씬 쉬워지지 않을까.

자연에 동화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밤에는 별빛과 달빛을 벗삼고 개, 닭, 염소를 키우며 그들이 하는 말들을 귀담아 들으려 하다 보니 벌써 세 번째 봄을 맞게 됐다. 올 봄은 또 어떤 색깔로 우리를 찾아올지 참 많이 기대된다.
손영희 (시인·한국시조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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