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란 보름달이 뜨기를….
노오란 보름달이 뜨기를….
  • 경남일보
  • 승인 2016.02.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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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달연 (경남농업기술원 농촌자원과장)
최달연

오늘은 1년 중 달이 가장 밝고 크게 빛나는 정월 대보름이다. 해가 바뀐 지 한 달이 훌쩍 흘러가버렸는데도 세상이 어수선 해서인지 새해의 정취를 느낄 수가 없다. 1월보다 음력 정월이 더 정감 있게 느껴지는 건 예부터 우리 민족이 설을 쇠는 기준을 음력 정월에 두었기 때문이리라. 옛날엔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곤궁해도 이때만큼은 모든 것이 여유로움으로 넘쳐났다.

대보름에 먹는 오곡밥은 신라 21대왕인 소지왕이 까마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후, 까마귀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제물로 바친 유래에서 시작됐다. 오곡밥은 한해의 액운을 쫓고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조, 기장, 수수, 팥 등의 잡곡은 쌀에서 부족하기 쉬운 식이섬유와 각종 무기질이 풍부하고 다양한 폴리페놀 성분을 함유해 항암, 항산화, 혈당조절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몸이 찬 사람은 따뜻한 성질의 찹쌀, 콩, 기장을 많이 넣고,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팥과 같이 서늘한 기운의 잡곡을 늘리는 것이 좋다.

박고지·말린가지·고사리·고구마순·토란대등 묵은 나물은 겨울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C와 섬유질이 풍부해 활력소를 주고, 원기를 북돋아줄 뿐 아니라 그 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부럼을 깨먹으면 한 해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겨울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피부에 피던 버짐을 호두, 잣, 땅콩, 밤 등 견과류로 예방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런 견과류에는 노화를 방지하는 아연 성분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이명, 난청 예방과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어릴 적 보름날 아침이 되면 눈 뜨기가 무섭게 액막이로 부럼을 깨물고, 한해 귀가 밝아지기를 기원하는 귀밝이술을 어머니가 챙겨 주셨다. 그러고는 휘휘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내 더위 사가라!’ 하고 더위를 팔고 마을회관 마당에서는 왁자하게 윷놀이 대회가 농악판 속에서 사나흘씩 베풀어졌다. 아이들의 설렘만큼이나 밝은 빛을 발하는 큰 보름달이 돋아 오르기 시작하면 쥐불놀이가 이곳저곳 논·밭두렁에서 폭죽처럼 피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정월의 풍경들이 시름시름 사위어 가고 있어 아쉬움만 더한다. 선조들은 정월 보름달이 붉게 보이면 그 해는 가물고, 희게 보이면 장마가 든다 하여 한해 농사일에 필요한 길흉을 점쳤다. 오늘은 붉지도 희지도 않은 노오란 보름달이 뜨기를….

최달연 (경남농업기술원 농촌자원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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