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척
봄의 기척
  • 경남일보
  • 승인 2016.02.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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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행련 (경남교육연구정보원)
서행련
누가 말했던가.

가을은 산꼭대기부터 천천히 물들이며 내려오고, 봄은 가장 낮은 평지에서 불붙는 듯 산으로 올라간다고….

작은 제비꽃, 흔한 토끼풀 등등 아주 작은 사소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화려하지도 않고 찬란하지도 않아서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은 이른 봄의 기척을 나는 한참동안 바라보며 서 있다.

아무리 가냘픈 꽃이어도 꽃의 실한 뿌리는 내내 어두운 땅 속의 물줄기를 찾아 발을 뻗는다. 그것이 봄을 흠뻑 적시는 뿌리의 미덕이리라.

소박하고 수수한 것들의 봄맞이를 바라보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추웠던 겨울을 이겨낸 것이 대견하고, 제비꽃이 밀어올린 콩 한 알 크기의 그 꽃잎이 더욱 눈부시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봄맞이는 화전을 부치는 일로 시작되었다. 부엌에 있던 석유곤로를 양지 바른 마당에 내어 놓으시고는 겨울 내내 그을림을 덮어쓰고 있던 곤로의 심지를 짧게 자르셨다.

곱게 익반죽한 찹쌀을 펴서 동그랗게 펼치고서, 그 위에 진달래 꽃잎을 한 장 한 장 놓으시면 앞마당에서 봄의 향연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남의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거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덕담대로 한다면, 나도 누군가의 ‘봄이 되어라’는 말씀이신데, 정작 나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항상 쫓기듯 경쟁을 하고, 때론 곱지 못한 마음으로 남을 원망 할 때도 많았다. 어머니는 아마도 딸의 고약한 심성을 알고 에둘러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리라….

봄은 서서히 다가오지만, 찬란히 빛나는 것들의 거름이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아지랑이의 열기가 보이기 시작하고. 쌓아 올린 객토는 한창 분주해질 시간을 기다리며 실하고 찰지다. 지난 겨울의 기억을 잊고 봄을 맞는 식물들의 기지개는 눈부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부끄럽지 않은 봄맞이를 위해 가만히 읊조려 본다.

“마음아, 마음아, 무엇을 망설이니?

가시에도 장미가 피는 이 좋은 계절에….”


서행련 (경남교육연구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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