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봄은 오건만
[경일칼럼] 봄은 오건만
  • 경남일보
  • 승인 2016.02.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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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이제는 돌아갈 이 없는 시골집 마당가에 조선 매화가 저 홀로 피어나서 향기를 내고 있는지 애를 태운다.

아버지는 가족들이 매화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라 하는 심정으로 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고요히 눈을 감고 세상 천지에 난만하게 매화가 건너오는 시간을 떠올린다.

끝내 아파트 정원에 핀 매화 몇 송이 찻잔 속에 띄우고서야 분분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게임에 빠진 아버지와 계모로부터 상습학대와 폭행을 당해온 11살 소녀가 배고픔을 참지 못해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엄마가 딸을 때려 숨지게 해서 차량에 싣고 다니다 야산에 암매장하고 폭행과 굶주림으로 숨진 자녀의 시신을 훼손하고 4년간이나 냉동보관했다는 부모도 있었다.

목사라는 아빠가 여중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한 뒤 1년여 동안 시신에 방향제까지 뿌려가며 방안에 방치한 사건까지 가히 놀라운 공포의 시리즈물을 대하는 느낌이다.

2015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발생건수는 사상 처음 1만건을 넘어섰고, 이 중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가 전체 8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학대 장소의 86%가 가정이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이며 내 자식 내 맘대로 하겠다는 사고와 다를 게 없다. 자식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부모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잘못된 사고방식 탓이다.

처음에는 교육이나 훈육이라는 이유로 손을 대다가 차츰 상습폭력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살인으로까지 내몰리는 극한의 상황을 바라보는 심정이 참담하다.

부모의 학대로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과연 어디까지 치유 가능할지 평생 휴유증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불행한 인생도 보았다.

사회의 방관으로 우리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주변을 돌아볼 일이다.

사회를 변화시킬 인식의 힘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건지, 기막힌 패륜범죄로부터 보호할 사회적 장치는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혈연에 집착하는 가족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러다 보니 가족간의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혈연관계나 소유개념으로만 접근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가 바라보는 가족에 대한 시각이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한다. 더불어 이같은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도 마련되어야 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다 봄이 아니라더니 변덕스럽고 잔인한 세상에 턱없이 지고마는 작고 여린 꽃망울들에게 가족과 집이란 것은 얼마나 시리고 아픈 감옥이었을지.

시절이 난분분해도 올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기어이 꽃은 환하게 피어날 것이다.

황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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