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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기행(79) 통영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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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2  22: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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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 전경


추강낙안으로 평화와 풍요의 깊은 정을 안겨주고 먼 길 떠나간 기러기는 어디만큼 갔는지 청둥오리와 어울려서 노닐다 간 강섶에는 버들강아지의 하얀 솜털이 뽀송뽀송하게 돋아나서 봄 마중이라도 나서보려고 남녘을 향해 통영으로 길머리를 잡았다.

감상에 젖으며 추억 속을 거닐기에는 너무나 팍팍한 우리들의 삶이지만 새봄에 걸어보는 기대를 위안삼고 움츠렸던 마음도 추스르고 고달픈 육신을 달래며 하루해 일정으로 35번 고속도로 통영 요금소를 나왔다. 푸른바다는 크고 작은 섬들을 점점이 띄워 놓고 아침 햇살에 빤짝거리는 작은 별들을 끝도 없이 촘촘히도 깔았다. 동양의 나포리 강구만 고깃배는 잔칫집 신발처럼 빈틈없이 빼곡하게 겹겹으로 줄을 섰고 더러는 펄떡거리는 활어를 그물망으로 퍼내느라 저마다 바쁘다. 맞은편 활어시장에서는 줄지어 늘어선 고무대야마다 넙치며 도미가 퍼덕거리며 물을 튕기고 낙지와 해삼이 조개류와 함께 그릇그릇이 넘쳐나는데 여기저기서 흥정을 하느라 한눈 팔 겨를이 없고 회를 뜨는 바쁜 손놀림에 활기가 넘쳐난다.

어시장 안길로 접어들어 비탈진 언덕배기 ‘삼도수군통제영’을 찾았다.

통제영의 문루인 망일루로 들어서니 수향루를 곁에 두고 좌청과 산성청이 좌우로 나란한데 가운데의 가파른 계단위로 내삼문인 솟을삼문이 내려다보고 있다.

협문으로 들어서자 세월의 블랙홀로 빨려들어 가듯이 410여년 세월의 깊고 깊은 역사 속으로 빠져버린다. 세병관 건물의 웅장함에 압도 당한 일순간 ‘세병관’ 이라는 커다란 현판의 위용에 또 한 번 짓눌려버린다. 용머리는 길어서 하늘과 땅을 한일자로 갈라버리고 아름이 벅찬 기둥들이 겹겹으로 받힌 팔작지붕은 하늘을 가리고 땅을 덮어버렸다.

바닥 면적이 제일 넓은 전국 최대의 건물로 온갖 전란을 겪으면서도 병화도 범접을 못하고 포화도 빗겨간 410년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국보 제305호다.

마루청에 올라서면 우물마루의 바닥판자가 얼마나 두꺼운지 육중한 무게감이 촉감으로 전해지고 드높은 천정의 중보는 청황룡의 단청을 입혔는데 길이도 놀랍거니와 굵기의 우람함에 위압감이 짓누른다. 툇마루를 가린 바람벽은 육중한 들창문으로 후방의 시야까지 확보하고 상단으로 바닥을 깔아서 어전을 대신한 위엄을 갖췄는데 통제사의 쩌렁쩌렁한 군령소리가 멀리 서피랑과 동피랑에 높이 솟은 서포루인 서장대와 동포루인 동장대에 부딪쳐서 강구만의 거북선과 판옥선의 수군에게 귀청 떨어지는 소리로 전해 질 것 같다.

세병관을 중심으로 통제사의 직무실인 운주당을 비롯하여 30여 채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옛 궁궐과도 같이 널따랗게 자리하고 있어 종일토록 둘러봐도 해가 모자랄 것 같다.

 
   
▲ 세병관


세병관에서 가까운 충렬사를 찾았다. 높다란 홍살문을 들어서면 협문을 좌우에 두고 커다란 태극문양이 그려진 충렬사의 정문이 버티고 섰다. 협문으로 들어서면 널따란 정원 좌우로 수백 년 수령의 동백나무가 빨갛게 꽃을 피우고 반기는데 마주한 2층 문루인 ‘강한루’로 들어서면 좌우로 여섯 개의 비각을 줄지어 거느린 외삼문이 짙은 단청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한껏 내품는다. 계단을 올라 외삼문을 들어서면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는 가운데로 높다란 내삼문이 ‘충렬사’라는 현판을 달고 옛 내음이 물씬 나는 숙연한 분위기를 은근하게 자아낸다. 춘추로 충무공께 제사를 올리는 사당건물은 보수공사 중이라서 임시 참배소를 옆으로 마련하고 공의 진영을 모셨다. 헌향재배로 숭배의 예를 올리고 전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충무공께서 명나라 신종으로부터 받은 여덟 가지의 유물로 보물 제440호인 도독의 ‘직인’과 ‘직인상자’ 그리고 ‘참도’와 ‘귀도’며 ‘곡나팔’ 등 ‘팔사품’이 전시돼 있다. ‘참도’는 칼날의 길이만 163cm라니 대단한 장도이고 ‘귀도’는 조각과 문양이 특이한 장도다.

충렬사를 나와 박경리선생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해저터널로 걸어들어 갔다. 483m의 터널의 끝이 미륵도이다. 일제강점기에 ‘판데목’ 이라는 좁고 얕은 해협을 메워 통행하다가 이를 다시 깊게 파서 운하로 만들고 그 아래로 당시로는 동양최초이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해저터널을 5년의 대공사 끝에 완공하여 인마와 차량들이 나들면서부터 섬이라는 개념을 잊게 하였다. 지금은 차량은 통제하고 보행만 허용되는데 일제하의 우리 선조들이 오로지 정으로 쪼아내고 삽과 곡괭이로 파내어 피와 눈물로 완공한 유적으로서 내딛는 발자국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등록문화재 제201호이다. 해저터널을 다시 나와 충무교를 건너서 산양일주도로를 우회로 진입하여 산양읍사무소 앞을 지나 미륵산 중허리 길을 오르니까 고갯마루의 남향받이에 단아한 2층 양옥의 ‘박경리기념관’에 닿았다. 1층은 사무실과 관리실이고 산기슭과 평평한 2층에 오르면 전시실 밖을 정원으로 꾸몄는데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라고 새긴 기단을 밟고 선생님의 작은 동상이 남향포구를 바라보고 계신다.

전시실 벽면에는 선생님의 삶의 연대별 기록과 작품들의 소개 글이 붙었고 유리진열장엔 육필원고와 연재된 문학지들이 가지런한데 ‘작가와의 대화실’에는 허리가 잘록한 까만 재봉틀과 앉은뱅이 식탁이 집필의 책상을 겸하고 있으며 영상실에 앉으면 생전의 영상으로 선생님과 만날 수 있게 알차게 마련돼 있다.

나무데크의 계단을 살금살금 밟으며 선생님의 묘소를 찾았다. 공원으로 조성된 널따란 산중턱의 잔디밭에 글 한 자 새기지 않은 작은 상석을 앞에 높고 봉긋한 봉분 하나가 선생님이 계신 유택이다. 예를 올리고 남향포구를 내려다보며 잔디를 깔고 앉았다.

“햇볕이 따뜻하지?”
“바다 빛깔도 진하네요.”
“문인들은 잘 있겠지?”
“달포 전에 정기총회를 했습니다.”
“참판댁의 홍매화도 피었겠구나.”
“아직은요. 여긴 진달래가 오르막길 모롱이마다 피었네요.”
“저 멀리서 파도가 봄을 실어 오잖니.”
“기념관이 꽤 넓네요. 벽에 걸린 옥색 두루마기에서 선생님의 냄새가 많이 나요.”
“나 화장 안 해.”
“동백기름도 안 바르셨잖아요.”
“저게 다 동백이야.”
“토지의 종착점인 해방 이후의 지식인들을 말하려다 미완으로 남기고 가신 ‘나비야 청산가자’를 지금은 많이 쓰셨겠지요?”
“나비가 봄 마중 가는 길목이 여기야.”
“언제 평사리로 한 번 모실까요?”
한참을 아무 말 않던 선생님은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훨훨 청산으로 날아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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