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춘추] 토마토가 익어가는 시간
[경일춘추] 토마토가 익어가는 시간
  • 경남일보
  • 승인 2016.03.03 0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행련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교감)
서행련

지난 일요일, 귀농해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친구는 잔뜩 쉰 목소리로 ‘아파도 아플 시간이 없음’을 호소했다. 평일에는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와서 토마토를 따지만, 일요일은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토마토라는 게, 생물이라는 게 그래. 오늘 안 따면 내일은 그대로 벌겋게 익어버려서 공판장에 가도 받아주지를 않아.”

해마다 봄이면 토마토를 몇 박스씩 받아먹으면서도 정작 일손 한번 거들어주지 않은 것이 너무 미안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 멀지 않은 친구의 토마토 농장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미안함으로 도착한 친구의 토마토 하우스는 대저의 너른 들판 사이에 있었다. 햇빛이 맹렬한 하우스 안은 벌써 여름인 듯했다. 밭이랑과 밭고랑 사이를 오가며 토마토를 따는 일은 무조건 많이 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이것을 따야 할 것인지, 따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구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기 통통한 토마토 엉덩이를 잘 봐. 앳된 연두색에서 노오란 색으로 익어가는 걸 따야 해.”

그 미묘한 색깔의 변화가 바로 토마토가 익어가는 시간들이었다. 씨앗에서 모종으로, 그리고 다시 하우스 안으로 옮겨지기까지 토마토를 키운 건 햇빛과 바람과 비, 그리고 농사 짓는 사람들의 어진 마음이었다.

밭고랑 사이사이에 볏짚과 깻묵을 섞어 놓으면 토마토의 당도가 높아진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러나 지심(땅의 힘)을 잃을까 싶어 2년의 휴지기를 번갈아가며 쉬어가기도 한다고 했다.

무엇이든 ‘빨리빨리’를 외치는 동안, 정작 우리는 행복했을까, 핸드폰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그리움이 고일 시간조차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시속 60km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꼭 그만한 속도로 다가왔다 물러나는 바깥 풍경처럼 타인과 나의 경계 또한 그저 ‘스쳐가는 것’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새 우리들의 삶은 본질보다는 ‘눈앞의 현상’만을 좇아 허둥지둥 헤매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곡선인 자연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삶도 그렇게 여유롭고 둥글둥글 닮아갈 것을….

서행련 (창원명지여자고등학교 교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