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그 영원의 테마 -질매재
길, 그 영원의 테마 -질매재
  • 경남일보
  • 승인 2016.03.1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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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희 (시인·한국시조문학관 사무국장)
손영희
진성에서 금산으로 넘어가는 월아산 질매재.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가을의 단풍과 또 눈 쌓인 겨울의 풍경이 총천연색 영화처럼 다양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멀리서 보면 산과 산 사이로 마치 비단이 흘러내리는 모습 같고 여성이 막 출산하려고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함안 쪽에서 자동차도로를 따라 진주 쪽으로 오다보면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그 해를 배경으로 언듯언듯 보였다 사라지는 월아산 고갯길.

마음이 심란하거나 벚꽃이 만발할 때 또는 더위에 지쳐 의욕이 없을 때, 고운 단풍이 보고 싶을 때, 함박눈이 내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때 가보고 싶은 곳, 누구라도 그리운 이를 생각하며 홀로 외롭고 싶을 때 와 보라.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것 같은 외진 길들이 감각을 마비시킨다. 저 순진무구한 길들은 누구의 그리움으로 꽃핀 문장인지, 왜 나를 이곳까지 불러들이는가. 당신은 수려하고 달콤해서 삶의 공허함으로 한없이 작아진 내 몸에 환하게 불을 밝혀준다.

사계절의 모습을 그곳에서만큼 뚜렷이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마치 병사들이 도열하여 일국의 왕을 사열하듯 일사불란하게 열을 맞춰 벚꽃이 핀다. 지나가는 차들도 많지 않아서 한가롭게 꽃터널을 지나가며 들뜬 봄을 맞게 되는 곳, 여름이 오고 짙푸른 나뭇잎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어 저 서늘한 둠벙 속으로 첨벙 뛰어들고 싶게 만들어 주는 곳, 가을이 되면 벚나무가 오색창연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한 시절을 풍미한 카사노바처럼 청춘의 절정을 노래한다.

하지만 겨울이 되고 눈이 내리면 사정은 만만치 않다. 겁도 없이 눈 쌓인 고개를 넘다가 미끄러져 벚나무 하나를 기어이 쓰러뜨리고야 멈춘 어느 겨울의 아찔한 일탈. 출입금지 팻말이 세워지고 나면 질매재는 한동안 휴식기를 갖는다. 독자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한겨울의 저 침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지만 그 많던 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아쉽기만 하다.

이제 곧 벚꽃이 만발할 것이다. 진주의 동쪽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하는 그곳으로 이번 봄엔 꼭 한번 다녀가시길.
손영희 (시인·한국시조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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