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방문기]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박물관 방문기]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 김영훈기자·김송이인턴기자
  • 승인 2016.02.22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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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
▲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 내 위치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전경.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 인민군 16만명과 보안군 3만 4000명, 도합 19만 4000명이 탱크 242대, 전투기 20여 대, 대포 172문, 곡사포 1258문으로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남침을 개시해 서울은 3일만에 함락됐다.

국군은 미군 및 유엔군의 지원을 얻어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100만 여명의 중국군 개입으로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됐다.

전쟁중에 늘어난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1951년부터 거제도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포로수용소가 설치됐고 인민군 포로 15만, 중국군 포로 2만 등 최대 17만 3000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그 중에는 300여 명의 여자포로도 있었다.

1951년 7월 10일 최초의 휴전회담이 개최됐지만 전쟁포로 문제에서 난항을 겪었다. 특히 반공포로와 친공포로간에 유혈살상이 자주 발생했고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 등 냉전시대 이념갈등의 축소현장과 같은 모습이었다.

1952년 6월 18일 한국정부의 반공포로 석방을 계기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은 끝났고 수용소는 폐쇄됐다.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전시실 모습.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족공원 내에 위치한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에는 전쟁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포로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생포·이송되었는지 또한 그들의 당시 생활은 어떠했는지 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실물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볼 수 있다.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아픔이 그 모습 그대로 박제돼있는 셈이다.

거제수용소의 포로들은 당시 UN의 제네바 협정에 의해 국군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 이념갈등을 겪으며 결코 녹록치 않은 생활을 했다. 혼합되어 수용돼있었던 반공포로와 친공포로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서로 충돌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살인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격심했던 6·25 전쟁의 이념갈등을 축소해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처럼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의 전시실에서는 당시 포로수용소 내의 이념갈등, 생활상 등을 이동 동선에 따라 분류해 그 당시 포로들이 겪었던 갈등 등의 모습들을 상세히 보여 준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6·25전쟁의 발발에 대해 상세히 기록돼 있고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포로 발생과 배경, 거제도 포로수용소, 포로수용소 생활사, 포로수용소 갈등과 분류, 폭동 등에 대해 전시와 기록을 통해 알려주고 있어 전쟁의 아픈 역사를 간접적으로 경험 할 수 있다.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은 1999년 10월 개관 이후 연간 70만명 가량 방문하는 역사체험공간으로서 2012년 12월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된 공립 박물관이다. 2013년부터 관람자 중심 문화에 맞추어 전시체험, 교육, 문화행사 등 다양하면서도 실질적인 역사체험이 될 수 있도록 탈바꿈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전시실에는 당시의 군복이 전시돼 있다.
 
▲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전시실에는 전쟁 당시 사용했던 물건이 전시돼 있다.
▲ 거제 포로수용소 조형도.


특히 전시관, 야외전시장, 무기전시장 등이 동선 내에 조성돼 자연경관과 박물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특색을 살려 누구나 찾기 편한 곳, 교육과 교훈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조희윤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 학예사는 “박물관을 통해 아픈 역사를 공유해 다음 세대들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평화를 지켜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며 “이를 위해 포로수용소유적박물관은 체험 중심의 박물관 교육과 지역민들에게 교육기관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에게 다가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영훈기자·김송이인턴기자




전쟁 당시의 통신장비.
1952년 5월 7일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는 사건을 모형도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전쟁 당시 사용했던 무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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