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가게] 봉곡동 헌책방 '형설서점'
[오래된가게] 봉곡동 헌책방 '형설서점'
  • 김지원
  • 승인 2016.03.23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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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대표 15년째 운영중…“책방 아무나 하는것 아니야”
 
형설서점 최준 대표. 책을 구하러 나가지 않는 시간 대부분은 책방을 지키며 온라인 매장 관리를 한다.


영화 ‘내부자들’에는 우장훈(조승우) 검사의 시골집으로 서점 하나가 등장한다. 충북 단양 산속에 자리한 새한서점이다. 첩첩이 쌓인 책들의 계곡은 실제 새한서점의 모습 그대로다. 서울에서 단양의 한 폐교를 거쳐 이곳까지 13만권의 책을 차곡차곡 옮겨온 이금석씨가 서점을 꾸려오고 있다. 30년 된 서점이 영화 속 배경으로 나와서야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이 헌책방의 현실이다. 한국출판연구소가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 지난해 국민 10명 중 4명은 한권의 책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인구는 해마다 줄어들고 도서구매 시장은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책이 잘 팔려야 헌책방도 잘된다고 하는데 웃물이 말라버린 헌책방의 운명은 낡은 책장처럼 위태롭다.

진주에도 이름난 헌책방이 몇 곳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터미널 옆에서 40여년 장사를 해오다 터미널 2층으로 옮긴 소문난서점이나 한결같이 남강변을 지켜온 동훈서점은 진주 토박이들에게는 랜드마크로 기억될만한 공간이다. 칠암동에 새로 자리를 잡은 신참 소소책방도 있다.

진주시 봉곡동 로타리 인근에는 헌책방 형설서점이 있다. 진주중학교 앞에서 ‘즐겨찾기’란 이름으로 헌책방을 시작한 최준(53) 형설서점 대표는 헌책방을 꾸려 온지 15년차다. 최 대표는 친구따라 헌책방을 시작했다고 했다. 친구네 책방에서 일을 돕던 시절 “너는 책방 해도 되겠다”는 친구의 말이 시작이었다. “책방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체질이 맞아야지...”라는 최 대표는 4년전 현재의 위치(봉곡동 14-2)로 옮겨오면서 ‘형설서점’이라는 이름으로 헌책방을 이어가고 있다.



 
신학대로 진학한 아들이 보내온 편지.
최 대표가 보여준 수첩에는 필요한 책을 요청한 고객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가지런히 메모돼 있다. 엄청난 책의 창고 속에서 고객들이 직접 필요한 책을 찾아내는 것도 헌책방의 묘미다.


회사원으로 일하다 IMF 이후 헌책방을 차린 최 대표에게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자녀가 있다. 신학대로 진학했다는 아들이 적은 편지가 서가에 붙어 있었다. 최 대표의 부인이 오전에 책방을 잠시 지키고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최 대표가 맡아서 관리한다. 책방살림은 경제적으로 힘들다는게 최 대표의 한숨이었다. 예전에는 아파트 이사철이나 학교 근처에서 책을 구하러 다니기도 많이 했다고 했다. 요즘은 그마저도 많이 줄어 고물상 등을 통해 오래된 책들을 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10여년 전만해도 학습지 판매로 먹고 살수도 있었다는 최 대표는 교과서나 학습지가 잘 팔리곤 하던 ‘학기초 특수’ 라는 것은 이제 없어졌다고 했다. 드물게 책방을 찾는 손님은 고서나 한의학, 약초 관련 책을 찾는 50대 60대가 대부분이다. 고서를 찾는 고객들은 서점 주인보다 찾는 책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 필요한 책이 들어오면 연락달라는 주문을 넣고 가기도 한다고 최 대표는 전했다. 고서 뿐만 아니라 절판된 책이나, 희귀본들도 헌책방의 리스트에서 종종 발견되곤 한다.

책에 대한 향수 때문에 헌책방을 버릴 수 없다는 최 대표는 “부산의 보수동처럼 진주도 헌책방들이 비슷한 곳에 모여서 거리를 이뤘으면 생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청계천, 동대문이나 인천 배다리 헌책방 거리처럼 책방거리로 특화시키는 것도 헌책방 생존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거였다. 요즘은 헌책방도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어 최 대표도 손님을 상대하지 않는 시간은 책의 정보를 온라인 매장에 올려 관리하는게 일이라고 했다.

형설서점의 현관부터 안쪽 깊은 서가까지 쌓인 수많은 책들. 그 많은 책들 중에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혹은 누군가 마음을 움직일 한 권의 ‘발견’이 숨겨져 있다. 헌책방에서 성사되는 거래는 가치의 재발견이다. 새책이었다가 헌책이 된 상품. 헌책방을 꾸려가는 이들은 헌책의 가치를 찾아낼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오래된 가게를 찾아나선다. 오래되었기에 추억을 간직했고, 오늘 또 문을 열었기에 새 만남이 시작된다. 오래된 경남일보가 내일 독자들과 만날 오래된 가게 이야기를 찾아가는 이유다.

김지원 미디어기자 webmaster@gnnew.co.kr

 
책의 무게 때문에 따로 제작한 책장과 통로 위쪽 선반까지 빼곡히 책이 꽂혀 있다.

 

[알림] 오래된 가게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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