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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기행 (80) 정취암과 율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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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31  22: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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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취암 가는길에 옛일과 미래를 생각하고
사랑채 같은 율곡사에서 상념에 젖어든다

 
   
▲ 구절양장 처럼 굽이굽이 돌아 도착한 율곡사. 원효대사는 이곳을 왜 만들었을까.


하루가 다르게 산야의 빛깔이 달라지고 있다. 비탈진 과수원 여기저기서 청매실의 하얀 꽃은 눈 온 듯 만개했고 연분홍빛 홍매화도 가지마다 화사하다. 멀찌감치 홀로서서 외로운 목련꽃도 성글은 가지 끝에서 탐스럽고 복스럽다. 겨울나기가 얼마나 지루했으면 잎보다 먼저 꽃부터 피웠을까. 일상이 버거운 것은 초목도 마찬가지 일까. 봄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이 오죽했으면 도리행화도 꽃부터 먼저 피고 진달래도 복사꽃도 잎보다 먼저 피니 기다림의 간절함이 가슴을 저리게 하여 새봄맞이 길마중을 서둘러 나섰다.

갯버들 어우러진 강섶을 따라 청보리가 파란 들녘이 있어 좋고, 옛 세월을 붙들고 서럽기만 한 고택들의 애잔한 얘기를 솔깃하게 들으면서 개울물 흐르는 소리 따라 첩첩산중 굽이진 길을 오르면 풍경도 숨을 죽인 고즈넉한 산사가 있어 길머리를 잡았다.

진주시가지를 벗어나 3번 국도를 따라 오미와 팔미마을 지나 하정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여 20번 도로를 따라 문대를 지나면 단계리 초입에 ‘이충무공추모행로유적지’를 알리는 안내판이 섰다. 바람 잡고 나섰는데 쉬어가면 어떠랴 하고 신등119지역대를 끼고 돌아들었다. 충무공께서 이곳 단계삼거리를 거쳐 권율장군의 군영으로 행하셨던 역사속 옛길이기에 단계천 굽이진 물길을 따라 널따란 광장을 알차게 꾸며뒀다. ‘충무공이순신백의종군추모탑’이 자그마한 거북선모형을 거느리고 우뚝 선 앞으로 근엄하게 높이 선 장군의 동상 앞에 예를 갖추는데 티격태격 거리며 삐거덕 거리기만 하는 오늘날의 정치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단계리 석조여래좌상’의 전각 앞으로 다가섰다. 연화좌대위엔 커다란 석상이 좌정을 하셨는데 아뿔싸! 이럴 어쩌나! 만고풍상의 상처일까, 이목구비가 훼손되고 바른팔을 잃었다. 세월의 흔적이라기에는 너무나 참담한 깊은 상처는 중생들의 죄업을 대신한 법신의 보시였을까. 매무새를 고치고 합장의 예를 올리니 엷은 미소를 품으신다. 세월의 깊이 만큼 영험함일까, 가련한 중생을 위한 보리심일까. 오묘한 불심을 어찌 알랴만 속죄하는 심정으로 꾸벅꾸벅 절만 하고 돌아서야 했다.

단계오일장 갈림길에서 이리갈까 저리갈까를 망설이다가 한옥의 옛 내음을 맡으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기로 하고 옛 담장의 골목길을 더딘 걸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솟을대문의 구조도 다양하다. 협문을 양쪽으로 낸 솟을삼문이 있는가 하면 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간방이나 곡간이 붙은 것도 있고 측면으로 들어가는 협문도 있어 쓰임새에 걸맞은 다양한 구조들이 옛 사람들의 지혜를 생각하게 한다. 대궐 같은 고택들이 20여 채가 넘지만 주인들이 고령이라서 관리가 버거웠나보다. 하나 같이 허름하고 허술하여 부귀영화의 옛 추억도 곤하게 잠들었다. 미로 같은 돌담길을 이리 돌고 저리 돌며 온고지정에 젖어보지만 물러주신 조상들께 부끄럽고 죄스럽다.

갯버들 가지마다 버들강아지가 하얀 솜털로 토실토실 살이 오른 단계천을 따라 올라 모례마을 초입에 닿았다. 청정한 물소리를 겨드랑에 끼고 앉은 서낭당 돌탑은 세월의 이끼가 희끗희끗 피었는데 서리서리 금줄을 둘러치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한 간절한 소망이 새끼줄 마디마다 새록새록 영글었다. 두 손 모아 기원을 한몫 거들고, 가던 길은 차황면으로 이어지는 길이라서 다시 좌회전을 하여 산청으로 넘어가는 60번 도로에서 갈라서서 정취암 표지석의 안내를 따라 둔철산 너머의 정곡과 척지로 이어지는 굽이진 길을 오르는데 골짜기 건너편의 그림 같은 풍광에 눈길을 뗄 수 없어 길섶이 넓은 모롱이에 차를 세웠다.

 
   
▲ 300년의 세월을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는 정취암에서 과거와 현재 내일을 생각해 본다.


둔철산을 비켜 앉은 대성산 중턱 아래로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틈새의 벼랑위에 바윈 듯이 기와지붕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골 깊어서 외지고 산이 깊어 험한 곳에 천류도 멀리하고 인륜도 끊었건만 모질은 인연은 차마 끊질 못하여 실낱같이 외진 길을 없는 듯이 이었을까. 구절양장이 따로 없는 정취암 가는 길은, 굽이굽이 돌고 돌아 지난세월 돌아보고 또 한 번 굽이돌아 오늘을 돌아보고 돌아갈 길 굽어보며 내일을 생각하게 하는 상념의 길이다. 그러고도 몇 굽이를 돌아서 내려가자 바위틈을 헤집고 앉은 정취암은 추녀끝의 풍경을 바람결에 흔들면서 천년을 훌쩍 넘고 삼백년의 세월을 오늘에 이어왔다.

단청이 화려한 원통보전을 돌아서 돌 틈 사이의 돌계단을 올라 바위틈새를 돌아가면 산신각이다. 의상대사께서 창건을 하셨으니 돌이 되려 하셨을까 바위가 되려 하셨을까 무엇을 구하려고 이토록 외진 곳에 관음보살을 모셨을까. 산신전에 예를 올리고 응진전 뒤로 난 비탈진 산길을 올라갔다. 하늘이 점지한 신선들의 쉼터일까, 선녀들이 하강하여 무도회를 열었을까, 평평한 반석들이 드넓은 별천지다. 아찔한 발끝 아래의 수 십 길의 낭떠러지위에 정취암이 걸터앉고 시야는 일망무제로 열려있어 멀리 겹겹으로 산과 산이 빼곡하고 사이사이 강과 들이 끊어질듯 이어졌다.

쉬엄쉬엄 하산을 하여 머잖은 곳에 있는 천년고찰 율곡사를 찾아서 왔던 길로 돌아섰다.

다시 차황으로 이어지는 1006번 도로를 따라 율현마을 앞에서 7시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여 마을 안길로 접어들어 작은 계곡을 따라 오르막길로 차를 몰았다. 도란거리는 개울물 소리를 오랜만에 들으면서 작은 능선을 두어 굽이 넘어서자 산사의 초입임을 짐작하게 하는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일주문도 없고 천왕문도 없다. 들고 남의 경계가 없으니 안과 밖의 개념도 없다. 안이 곧 밖이요 밖이 곧 안이라는 일깨움일까. 창건을 하신 원효대사의 뜻 일까. 심오한 뜻이야 어찌 알랴만 자연석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단청이 고운 대웅전이 덩그렇게 높이 섰다. 우측으로 현당과 관심당이 어긋나게 앉았으나 단청을 입히지 않아선지 눈여겨 보이지 않고 언덕배기의 삼신각도 없는 듯이 자그만 하고 요사채도 목조고택의 작은 사랑채 같다. 어디를 둘러봐도 시멘트의 건축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천년고찰이다. 청정한 수행의 도량으로 청량감만 감도는데 유난히도 진한 단청의 빛깔이 흑과 백을 줄이고 청홍색으로 어우러져서인지 진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 또렷하고 선명하다. 주홍색의 활주를 받힌 추녀는 안정감을 더하고 처마 밑의 아기자기한 공포의 짜임새는 놀랍고도 신비롭다. 크기가 같은 직육면체의 반듯반듯한 목침이다. 어떻게 맞물리고 어떻게 포개어서 어떻게 쌓았을까. 감탄에 넋을 잃고 세월에 닳고 닳은 돌층계로 올라서 대웅전에 들어섰다. 천정의 공포 역시 목침으로 쌓고 쌓은 신비함에 홀려서 한참 후에야 유형문화재 373호인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에 헌향의 예를 올렸다. 닫집과 공포의 짜임새는 황홀경인데 벽화는 퇴색되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목침의 전설과 벽화의 전설이 천년을 이어져온 대웅전은 보물 제374호이고 소장한 괘불탱은 보물 제1316호이다. 묵언의 설법을 가슴에 담고 법당을 나서니까 향 내음이 천년을 배인 우거진 솔숲에서 은은한 솔향기가 사바세계로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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