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게] 진주 봉곡동 '만물열쇠'
[오래된 가게] 진주 봉곡동 '만물열쇠'
  • 김지원
  • 승인 2016.04.03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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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사람 임광택씨, 진주에 반해 눌러앉은 30년
저물어가는 열쇠점 ‘마지막 문’ 만물열쇠로 지킨다
 
[오래된가게] 진주 봉곡동 만물열쇠
자동차 열쇠 작업이 제일 재미있다는 임광택 사장. 마침 여분의 자동차키를 만드려는 손님이 찾아왔다. 열쇠만 봐도 차종을 척척 맞추던 임 사장이 정밀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열쇠 복사 하나 해주이소.”
“차가 뭐입니꺼.”
“소나탑니다.”
“와이에프 같은데…”
“맞습니다.”

사투리까지 영락없는 진주사람인줄 알았다. 만물열쇠 임광택 사장(64). 사연을 들어보니 목포가 고향인 임 사장은 부산 국제시장을 거쳐 진주에 눌러앉았다. 우연히 들른 진주에서 진주사람 인심에 반한 그는 33년째 열쇠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봉곡동 로타리에서 시내방향으로 형설서점을 지나 만물열쇠가 있다. 작은 가게 안에는 열쇠를 복사할 때 기본 틀이 되는 열쇠재료가 한쪽 벽을 가득 메웠다. 열쇠 깎는 기계, 쇠부스러기를 다듬어주는 기계, 안쪽으로는 도장파는 기계도 놓여있다. 장정 두어명이 서면 좁을 공간이다. 이 가게에서만 열쇠를 만들고, 도장을 팔아온 것이 20년이다.

임 사장은 1970년대 부산 국제시장에서 형님과 함께 레코드 도매업을 했다. 80년에 접어들면서 단속이다 뭐다 레코드 업을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공구장사로 업종을 돌렸다. 트럭으로 물건을 싣고 다니며 수입공구 판매업을 하던 차에 개천예술제에 가면 장사가 쏠쏠하다는 말을 듣고 진주를 찾아온 것이 인연이 됐다. 함께 장사 왔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혼자 물건을 두고 부산을 왔다갔다 하며 한달간 장사를 했다. 그저 진주가 마음에 들어서 눌러앉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처음에는 공구장사를 하며 차 문을 열어주는 일을 하다가 열쇠점을 차리게 됐다. 열쇠를 만지고 다루는 일이 재미도 있고 재능도 있었더라는 이야기였다. 상봉동 대롱골에 첫 가게를 열었고 봉곡동으로 옮겨 온지도 벌써 20년이 되었다. 이래저래 열쇠가게만 33년째. 그 동안 두 아들은 다 커서 외지로 나가 직장을 다닌다.

열쇠가게에 도장파는 기계를 놓고 도장업을 같이 한 것도 벌써 15년이다. 손으로 파는 일도 해보았는데 한 획만 틀려도 몽땅 다시 파야해서 그만두었다가 컴퓨터로 도장파는 기계를 들여놓았다. 임 사장은 “이름 석자 파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법인도장 같은 것은 글자도 많고 복잡해서 꽤 정교한 작업”이라며 손으로 도장파는 사람은 이제 진주에도 두어명 뿐일 거라고 전했다.

가게로 오는 손님은 대부분 아내가 도맡아 도장이든 열쇠든 파준다고 했다. 임 사장은 출장수리가 대부분이다. 진주 시내는 물론이고 함양, 합천까지 출장을 나간다. 열쇠 복사하는 도구부터 각종 재료들로 가득한 임 사장의 차는 이동수리소였다.



 
만물열쇠 임사장의 자동차는 이동 열쇠점이다. 각종 도구와 재료들로 가득한 짐칸이 이색적이다.



이 업종도 이제 사양길이라며 진주에도 열쇠점으로 새로 창업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거라는 임 사장. “저물어 가는 업종이니 나이가 많은 사람들 뿐”이라는 임 사장은 “내가 진주에서는 두세번째 고참일 껄”이라고 했다. 디지털 도어록으로 제품화돼 나오는 현관자물쇠는 누구든 사다 붙이면 되도록 쉽게 만들어져 나온다. 문 만드는 업체에서 자물쇠까지 같이 설치해버리곤 하니 만물열쇠같이 소규모의 열쇠가게로 돌아오는 일은 수리가 대부분이다. 임 사장도 아파트 업체의 AS를 맡아서 열쇠 수리 일감을 받아온다고 했다. “이대로 하다가 문 닫아야지 뭐”라는 임 사장은 담담한 말투였다.

임 사장은 출장 가서 현관문을 열어주면 오히려 짜증을 내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탄을 했다. 무리하게 쓰다가 고장이 나도 열쇠가게 탓을 하는 손님들도 꽤 많다는거였다.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 건네오는 손님들이 있으니 그 재미로 장사를 계속한다는 임 사장이었다. 임 사장이 특히 재밌어 하는 작업이 자동차 열쇠 복사다. 자동차 열쇠는 시동만 걸리면 만사 오케이라는 것. 자동차 열쇠는 고장나는 것이 아니니 시동만 걸리면 손님들도 100% 만족한다고 했다. 요즘은 자동차마저 스마트키로 변해가는 추세라 이것도 얼마 남지 않은 재미인 셈이다.

 

▲ 원래의 열쇠와 새로 깎을 열쇠를 기계에 물리고 작업을 한다. 눈과 손이 조심스럽게 기계를 만지고 깎아낸 열쇠는 쇠부스러기라도 남았을까 사포질로 마감해서 손님에게 건넸다.


30년 넘은 열쇠가게, 출장을 나가다보면 뜻밖의 부고나 사고와 접하기도 많이 했다.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 확인절차도 거치고, 덤프트럭 차벽 세워 놓은 데모현장에서 열쇠 만들어주는 일도 해봤다. 법집행 하는데 불려가 문을 따고 들어가보면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다. 임 사장은 에피소드를 풀어 놓으면 몇시간이 훌쩍 간다며 옛 이야기를 조금 꺼내놓았다.

부부싸움하고 남편이 나간 사이에 열쇠를 바꿔버린 경우도 보았다는 임 사장. 남편이 꽃다발을 한 아름 사들고 와 출장을 요청했는데 열쇠를 따주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강제로 열었다간 더 큰일 날 것 같아 “내가 어떻게든 열 수 있다. 그러니 그냥 열어달라”며 안쪽을 설득하기도 했다는 이야기에 웃음이 나왔다.

33년 경력으로 사람의 마음까지 열어버린 만물열쇠 사장님. 고장난 현관문, 잃어버린 열쇠로 속터지는 사람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며 출장수리차를 몰아온 세월도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열쇠를 만들고, 도장을 파는 일이 요즘의 시대와 맞지 않는 옛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아직은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 좁은 만물열쇠 사무실 기계들은 쌩쌩 돌아가고 있다.

김지원 미디어기자 webmaster@gnnews.co.kr



 

공구트럭을 몰고 찾아온 진주에서 33년째 만물열쇠를 운영하고 있는 임광택 사장. 이제 열쇠점은 저물어가는 직종이라며 지나온 추억을 조금 풀어놓았다.

 
만물열쇠 가게 안. 열쇠를 깎을 때 재료가 되는 기본형들이 즐비하다. 열쇠재료로는 진주에서 손꼽을만 하다며 임 사장이 자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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