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숙씨의 사콤달근 밥차 '장 담그기'
현숙씨의 사콤달근 밥차 '장 담그기'
  • 김지원·박현영 미디어기자
  • 승인 2016.04.10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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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담그기를 마친 현숙씨는 정성스레 장독을 닦았다. 장독뚜껑 가장자리로 나온 한지는 남은 소금물을 마저 붓고 나면 비닐까지 씌워서 완벽하게 봉한다.

[장담그기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YwtdWQ2xzfU

간장, 소금물과 메주가 빚어낸 갈색의 이 액체는 음식의 간을 맞춰주는 가장 중요한 양념이다. 늦가을이나 초겨울 빚은 메주가 겨울을 나고 이듬해 정월이나 삼월에 실시되는 집안의 중요한 행사가 바로 장담그기였다.

요즘에야 마트에 가면 간장종류만 진열장 하나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다. 브랜드 뿐만 아니라 진간장, 국간장, 조림간장, 외국산 간장까지 수십가지 간장이 늘어선 통에 무엇을 사야 할지 고르는 것도 고민이다. 그만큼 우리 식단에 중요한 재료가 바로 간장이다.

집집마다 그 집안만의 간장을 담궈 먹던 시절, 맛있는 간장은 일년내내 집안의 음식맛을 보장할 중요한 식재료였다. 정성들여 메주를 빚고 발효를 시키고 몇년씩 간수해 온 소금으로 소금물을 내 간장을 담근다. 부정타지 말라고 금줄까지 쳐서 기원의 마음을 더하기도 했었다.

음력 삼월삼짇날(4월9일), 장 담그는 현원당을 찾아갔다. 일년 음식농사의 중요한 첫 날이라, 매주 토요일마다 수업을 한다는 현원당의 문도들도 기대에 찬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메주와 소금물, 새 장 위에 띄울 홍고추와 숯이면 재료가 끝이다. 여기에 현숙씨는 어머니의 비법이라며 마른명태 한마리를 함께 넣었다. 지난해 음력 11월에 빚었다는 메주가 빚깔좋게 장만되어 있었다. 음력 9월이나 11월에 메주를 빚는데 9월은 아직 기온이 높은터라 조심스럽고 11월에 빚은 것이 잘 띄워지더라는 조언이었다. 입동에 가까운 겨울이지만 부녀자들의 할일이 끝이 없어 농가월령가의 11월령에도 메주를 띄워서 재워두라는 말이 나온다. 이렇게 겨우내 잘 띄워둔 메주가 제 빛을 발할 시기가 왔다.

 
▲ 소금물의 농도가 중요하다. 날달걀을 띄워 500원짜리 동전만큼 떠오르면 적당한 농도의 소금물이 된다.


간수를 잘 뺀 소금 4되와 물이 서말 반이라는 현숙씨. 난감한 수치가 나왔다. ‘되바가지’는 크기가 정해져 있으니 그렇다치고 서말 반이면 몇 ℓ인가. 스마트폰을 동원한 끝에 나온 물의 양은 63.14리터. 정월달에 담그는 장은 소금양을 조금 줄인다. 3월은 기온이 더 오르니 상하지 않게 좀 더 염도를 높이는 것이다. 장담그기에서 물의 중요성은 ‘동짓달 눈 녹은 물을 쓰라’거나 ‘청명일, 곡우일의 강물’, ‘가을철에 받은 이슬물’ 등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로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좋은 물을 쓰라는 소리. 현원당에서도 좋은 물을 길러다 장을 담근다.

큰 들통에 물과 소금을 섞어 두어시간 녹기를 기다렸다. 소금물에 날달걀 하나를 띄워서 500원짜리 동전 정도 크기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떠오르면 적절한 농도가 된 것이다. 더 정확하게 알아보려면 노란콩을 소금물에 던져보면 알 수 있다. 물위로 동동 떠오르면 장 담그기 알맞은 소금물이다.

메주는 작은 부스러기까지 쳐서 22개쯤 된다. 잘 소독해둔 장독에 메주를 차곡차곡 앉힌다. 중간에 마른 명태를 한마리 넣는다. 명태는 장을 뜰때 쯤이면 다 삭아 없어진다. 간장 맛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메주를 마저 채우고 나면 장독은 거의 7, 8부쯤 찬다. 장독 입구에 가는 채반을 얹고 소금물을 붓는다. 이때 소금물 바닥에 가라앉은 찌꺼기나 남은 소금이 함께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현숙씨의 신경이 예민해진 순간이었다.
“물 일렁이지 않게 조심조심”
뜨기 어려울 정도로 바닥에 남은 소금물은 작은 통으로 옮겨 바닥에 깔린 소금을 마저 녹인 후 장독에 부어준다.
 
▲ 소금물에 겨우내 말리고 발효한 메주. 참숯과 붉은 고추까지 준비하면 장담그기 재로는 끝이다.


메주가 잠긴 소금물 위로 참숯과 홍고추를 넣으면 장담그기는 끝이다. 장맛이 불같이 일어나라는 기원으로 숯과 잡귀를 쫓는 의미의 붉은 고추를 넣어주던 풍습은 알고 보면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숯은 정화작용을, 고추의 매운맛은 소독과 함께 장맛을 보태주는 역할을 한다. 현숙씨는 재료를 다 채운 장독에 깨소금을 한주먹 뿌리고 쪼갠 대나무를 휘어넣었다. 메주가 소금물에 푹 잠겨 떠오르지 않게 하는 일종의 장치인 셈이다. 문도인 화가 수연씨가 “예전에는 돌을 넣었는데...대나무가 정화작용도 있고 해서 (돌 대신) 넣는다”고 거들었다.

장독을 덮기 전에 한지로 입구를 덮는다. 남은 소금물을 채우고 나면 여기에 비닐까지 씌워서 벌레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입구를 단단히 봉한다.

현숙씨는 7월에 뜨느냐, 9월에 뜨느냐에 따라 장맛이 달라진다고 했다. 7월에 뜨는 장은 9월장보다는 장맛은 덜하지만 된장맛은 더욱 좋다는 이야기였다. 9월에 뜨면 장맛도 된장맛도 다 좋다. 삼짇날 담금 장을 40~50여일 지난 7월에 뜨면 노란 빛의 고운 된장을 만들 수 있다. 제대로 만들어진 노란 된장은 몇년을 두어도 그 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색이 고운 된장은 음식에 넣어 보기좋게 양념하기도 좋다. 장을 담근지 오래될수록 된장색도 짙어진다. 갓 만든 된장에 처음 수곡에 들어와 만들어둔 첫 된장으로 만든 겹장이 더해지면 맛의 상승효과는 더 커진다.

간장을 담궜으니 한해 음식농사는 절반쯤 지은 셈이다. 장이 잘 익는지는 조바심 내지말고 장독과 자연에 맡겨둔다. 요새같이 먼지가 많아서는 뚜껑을 자주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장맛을 버릴 우려가 있다. 장독뚜껑을 덮고 “장 담그기 끝” 이라며 쿨하게 돌아선 현숙씨가 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붙든다.

김지원·박현영 미디어기자


 
▲ 메주를 장독에 넣고 소금물을 가득 붓는다. 참숯과 고추를 띄우고 대나무로 메주가 떠오르지 않게 눌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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