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비진도 산호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비진도 산호길
  • 경남일보
  • 승인 2016.04.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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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피어난 길 따라 섬 속으로 떠나는 여행
▲ 외항의 미인도전망대에서 바라본 내항의 모습

◇봄이 익어가는 비진도 산호길

섬에서 섬으로 이어 걷는 ‘한려해상 바다 백리길’은 통영의 아름다운 6개 섬을 걷는 코스로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한려수도를 걸으면서 그 풍광의 경이로움과 확 트인 바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저절로 힐링이 되는 둘레길이다. 1코스 미륵도 달아길, 2코스 한산도 역사길, 3코스 비진도 산호길, 4코스 연대도 지겟길, 5코스 매물도 해품길(소매물도 등대길 포함) 모두 합쳐 42.1km 약 백리길이라 해서 ‘한려해상 바다 백리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려해상 바다 백리길 다섯 개 코스 중, 오랫동안 가고 싶어했던 비진도를 맨 먼저 탐방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진도를 겨울여행지로 추천하는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꼭 봄에 가길 권하고 싶다. 그것도 봄이 한창 무르익은 3월말부터 4월 중순까지가 제격이다. 산호 빛 바다가 섬을 에두른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동백꽃이 떨어져 길바닥에 사뿐히 내려와 부활한 모습으로 탐방객들을 맞이해 주는 동백숲길을 걸어가는 행복감도 만끽하고, 무엇보다도 선유봉 오르는 가파른 돌길 길섶에서 다소곳이 기다리는 노루귀, 개별꽃, 현호색, 바람꽃 군락지를 만나면 비진도 탐방을 왜 봄에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비진도, 그 이름 속에 무엇인가 신비로운 세상이 숨어있을 것 같고, ‘비진비진’ 다정하게 불러보면 산호색 치마를 입은 처녀가 땅두릅 새순 가득 담은 바구니를 이고 다소곳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섬이다. 통영항에서 40분여만에 닿은 비진도, 원래 내항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배가 서둘러 지나치는 바람에 외항에서 내렸다. 잘못 접어든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듯이, 오히려 외항에서 내린 것이 트레킹을 하는데 더 좋았다. 외항선착장에서 출발해서-비진도 해수욕장-외항마을-내항마을-비진분교-숲속 산책로-외항마을-비진도 해수욕장-다랭이밭길-망부석 전망대-미인도 전망대-선유봉-진달래꽃길-비진암-동백나무 군락지-외항선착장까지 4.8km를 8자모양으로 순환하는 둘레길을 선택했다.

 
▲ 다랭이밭 사이로 난 탐방로


◇생태의 보고(寶庫), 비진도

미인도라고도 불리는 비진도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보배로운 섬이라는 뜻으로 ‘비진도(比珍島)’라고 불렀다고 한다. 과연 이 섬에는 어떤 보배가 숨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출발한 이번 힐링여행, 산호빛 바다도 보배요, 내항에서 바라본 외항의 모습도 보배요, 한켠은 은모래·다른 한켠은 몽돌이 공존하는 비진도 해수욕장도 보배요, 미인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진도 내항의 모습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보배로운 것은 비진도의 생태(生態), 즉 봄꽃이었다. 550m나 되는 비진도해수욕장을 지나 외항마을부터 내항까지는 모두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약간 의외라는 생각을 하고 걸어갔지만 산호빛 바다가 탐방길을 따라 펼쳐져 있어 팍팍한 걸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내항의 비진분교를 지나면서부터 숲속 산책로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솔숲길을 에둘러 다시 비진도해수욕장까지 와서는 비진도에서 제일 높은 선유봉으로 갔다. 초입에 있는 다랭이밭 고랑 사이엔 비진도 특산물인 땅두릅이 땅속에 숨은 봄을 파릇파릇 밀어올리고 있었다. 봄이 바다를 건너온 것이 아니라 여리고 순한 땅두릅 순이 봄을 싹 틔우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울이 떠난 자리 싹을 틔운 봄을 땅두릅 순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다랭이밭길을 지나자 가파른 돌길이 나타났다. 한 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걸어서 그런지 발걸음이 다소 지쳐 있었는데, 돌길을 오르려니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러나 금방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축제를 만날 수 있었다. 길섶에는 봄꽃들의 향연이 우리의 무거운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줬다. 노루귀, 현호색, 개별꽃, 제비꽃, 양지꽃, 바람꽃 등 떼로 핀 꽃들이 우리를 반겼다. 지친 발품도 쉬게 할 겸, 한참 동안 꽃들이 펼쳐놓은 잔치에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가파르고 팍팍한 돌길은 사라지고 온통 꽃길이 우리를 맞이해 주는 듯했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와우! 이처럼 작고 귀여운 꽃 하나하나가 이 세상에 가장 소중한 생태요,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생각과 더불어 이처럼 귀한 이들과 함께 걷는다고 생각하니 힘든 오르막길이 금세 천국으로 가는 꽃길로 보였다.

 
▲ 비진암 가는 돌길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


◇엽서 속 아름다운 풍경

망부석전망대를 지나 다시 미인도전망대에 오르자, 그림엽서에서나 본 기막힌 풍경이 펼쳐졌다. 내려다 본 비진도 내항의 모습은 그야말로 비경이었다.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비진도 풍경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비진도해수욕장을 사이에 둔 내항과 외항의 모습, 탐방객들은 넋을 잃은 채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비진도에서 가장 높은 선유봉을 지나 만난 진달래꽃길과 후박나무자생지 또한 순박한 모습 그대로였다. 비진암으로 가는 동백나무숲길은 봄동백들이 이미 길바닥에 송이째 떨어져 있었는데, 꽃이 진 것이 아니라 꽃이 돌길을 가지 삼아 다시 피어나 있는 듯했다. 마치 탐방객을 위해 산화공덕(散華功德)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동백꽃길을 함부로 걸을 수 있으랴,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는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고 했지만 이말 역시 나를 밟고 떠나라는 의미가 아니라 차마 나를 밟고 떠날 수가 없을테니 나에게로 되돌아오라는 반어적 의미로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꽃송이 사이사이를 아주 느린 걸음으로 한 걸음씩 옮기면서 사랑의 추억을 되새기거나,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람은 동백처럼 아름다운 사랑을 엮으면서 걸어가라고 펼쳐놓은 환상적인 꽃길이었다. 어쩌면 이 길은 지난날의 사랑을 되새기는 회상의 길이 아니라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맞이하는 재생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걸으면 더욱 큰 행복감을 담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꽃길을 걸어 닿은 곳이 비진암이다. 새소리마저도 멎은 고요함이 더욱 운치를 더해 주는 고즈넉한 암자를 뒤로 하고 외항선착장으로 왔다.

산호빛 바다를 거느리고 사는 이치와 생태의 아름다운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비진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영혼을 맑게 하고, 자연의 섭리와 생태의 질서를 통해 삶의 이치와 사랑의 질서를 익힌다면 아름다운 영혼과 자존감을 가진 존재로서 오염된 세상을 넉넉히 건너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 고즈넉한 비진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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