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 기행(81) 월성계곡 수달래
윤위식의 기행(81) 월성계곡 수달래
  • 경남일보
  • 승인 2016.05.0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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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빛 물오른 꽃망울이 바위 위에서 당당하다
▲ 수승대



특정지역 유명한 꽃을 구경하려면 적절한 시기를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서두르면 일러서 꽃망울만 보게 되고 아차하면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이맘때면 월성계곡 수달래가 한창이겠지 하고 집을 나섰다.

35번 고속도로 지곡요금소를 나와 안의를 거쳐 마리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장풍 갈림길에서 37번 도로는 무주구천동으로 보내고 위천면 소재지로 들어섰다.

여기쯤 오면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고민 좀 해야 한다. 영남제일의 삼대동천인 안의삼동으로 들어서자 농월정이 다시 섰다며 화림동이 붙잡는 걸 정중하게 사양하고 용추계곡 심진동도 가까스로 뿌리치고 원학동에 들었는데 수승대를 들리자니 말목재 고개 너머 농산리 석조여래불입상을 두고 가야 할 것 같고 반구헌과 나란한 정온종택 들여서 말목재로 넘자니 수승대의 명승지를 두고 가야하니까 망설일 수밖에 더 있나. 강동마을 삼거리에서 고무신짝 활딱 벗어 던져보면 쉽게 판이 나겠건만 송화 가루 날리는 윤사월은 아니라도 해가 긴 걸 믿고서 ‘정온종택’부터 들였다. 솟을대문위에는 ‘문강공 동계정온지문’ 이라는 나라님이 내리신 정려홍패가 ‘숭정기원후오 기묘4월’이라는 세기를 적어 길게 붙었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사랑채의 문 위에는 이백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훗날 제주도의 같은 유배지에서 풀려난 추사 김정희선생이 귀향길에 먼 길까지 둘러서 기어이 찾아와 충절의 높은 뜻을 기리며 ‘충신당’이라는 당호를 써서 붙인 편액이 걸려 있다.

“광해군과 맞서 임금의 역린을 직언상소로 건드렸으니 목숨부지도 어려울 걸 제주도 유배로 끝났으면 됐지 어쩌자고 명나라와의 의만 생각하시며 후일도모는 생각지도 않고 삼전도의 치욕을 참지 못하시고 자결을 시도하셨습니까? 일찍 발견되지 않았다면 어쩌실 뻔 했습니까?”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면서 토를 달았다. “낙향하셨으면 편히 사시지 나라에서 찾는다고 마을 이름도 안 알려 주시고 ‘모(某) 동네(里)로 갔다’하라며 산속으로 가셨으니 유림들이 애가 타서 ‘모리산’라 이름을 붙여 움집이 있던 깊은 골에 재사인 모리재(某里齋)를 세웠잖습니까.” 고개를 숙인 채 불벼락을 기다려도 기척이 없어서 고개를 들었다. ‘모와’ 라는 또 다른 현판이 눈길을 끈다. 의친왕 이강이 사랑채에서 머물면서 친필로 남긴 ‘모리의 집’이라는 뜻으로 쓴 편액이다. 안채 뒤의 사당인 가묘에는 정조임금이 지으신 ‘어제시’의 현판이 문 위에 걸렸으니 이 모두 선생을 못 잊어함일 게다.

담장을 사이에 둔 ‘반구헌’은 동계선생의 후손인 야옹 정기필선생의 단아하고 소박한 고택으로 영양현감을 역임하고 고향으로 왔으나 거처도 마련하지 못해 안의현감이 마련해 주었다니 선생의 청렴함이 이 시대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고도 선생은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으로 ‘반구헌’이라고 당호를 붙였으니 더더욱 송구할 뿐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고 대문을 나서니 금원산 드높은 하늘은 더욱 청명하다.

‘수승대’를 찾아 위천교를 건넜다. 위천천의 드맑은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송계로는 노송이 우거진 솔숲을 끼고 머잖은 거리의 명승지 ‘수승대’로 안내했다. 널따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위천천 수변공연장의 수위를 조절하는 야트막한 보가 잠수교를 겸하고 있어 건너편으로 갔다. 물길을 따라 소나무가 우거진 자드락길은 원각사의 목탁소리가 고요함을 더하고 2층 누각의 요수정은 허리 굽은 노송들로 사방으로 둘러싸여 벼랑위에 없는 듯이 그림같이 앉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열두 개의 기둥과 추녀를 받힌 활주까지 모두 하나의 주춧돌 위에 섰으니 암반의 크기가 실로 엄청나다. 물 좋고 반석 좋고 노송까지 고고한데 거북바위 마주보니 선경이요 절경이라 기둥마다 주련이고 시를 적은 편액들이 창방 위에 빼곡하다. 거북바위를 향해 건너가는 바닥은 어쩌면 이리도 반석들이 웅장하고 바닥전부가 흙과 자갈 한 점 없이 암반으로 드넓다. 암반 위로 흐르는 물은 비단같이 미끄러진다. 거북바위에는 새겨진 이름들이 빈틈이 없는데 세월에 감춰진 기나긴 역사를 말하려 했을까? 백제의 애환서린 ‘수송대’의 옛 이름 옆에는 퇴계선생이 다시 지은 이름인 ‘수승대’라는 음각된 붉은 글씨가 또렷하게 남았다.

구연서원의 문루인 관수루 앞에 서니 옛 세월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든다. 아름드리 기둥은 휘었으면 굽은 대로 뒤틀렸으면 앵돌아진 모습대로 꾸미지도 다듬지도 않았으며 문루로 오르는 계단도 없다. 2층 문루 높이만큼이나 등이 높게 넙죽 엎친 거북형상의 웅장한 바윗돌에 어렴풋이 홈을 파서 계단으로 삼았으니 자연과의 조화로 순리의 거스름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으니 선인들의 지혜 앞에 이 시대의 과학화가 경망스럽기 그지없다.


 
▲ 월성계곡 수달래


다시 발길을 돌려 용암정을 건너다보며 월성계곡을 찾아 2km남짓한 북상면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했다. ‘가선정’과 ‘도계정’ 그리고 ‘병암정’인 세 정자가 옛 세월을 지키는 갈계숲의 들머리를 스쳐 지나면서 우거진 솔숲과 후일을 기약하고 용수막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말목재 가는 길로 접어들어 보물 제1436호인 ‘농산리석불입상’을 찾아 차를 몰았다. 1k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갓길의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기슭을 따라 100m 남짓한 산길을 들어서자 꽤나 널따란 잔디밭 한 가운데 높다란 석불이 외롭게 홀로 섰다. 문양도 없는 바윗돌 위로 발끝을 새겨서 받침돌로 삼았고 입상은 하나의 돌에 광배와 불신을 조각했는데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여도 이목구비가 완연하고 잘록한 허리에 날씬한 몸매를 감싸고 흘러내리듯이 주름진 옷자락이 하늘거리건만 어쩌자고 외긴 골에 적막하게 홀로 섰을까. 절터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으니 무슨 사연이 있기에 고갯길이 길고긴 말목고개 산기슭에 불보살을 세웠을까. 인적 없는 외진 곳에 뉘라서 찾아와 사시마지공양을 올리기는 고사하고 향 피우고 헌다하는 길손조차 없는데 주야장천 홀로서서 한결같은 자비발심 천년세월 중생제도 두고두고 감사하여 꾸벅꾸벅 절만하고 또 한 번 돌아보며 가던 길로 돌아섰다.

월성계곡 들머리의 강선교를 건너면 신선이 하강하여 비파타고 노닐었던 강선대가 고목의 그늘아래 바윗돌로 웅장하다. 산중턱 깊은 골에 ‘모리재’가 있다하여 마을길로 들어갔으나 봄 농사에 지쳤는지 바퀴 빠진 경운기가 길을 막고 있어서 발길을 돌려서 ‘모암정’에 올랐다. 청정한 계곡물은 나직한 ‘운첨폭포’에서 소리 내어 부셔지고 바위틈 곳곳에 ‘수달래’가 만개했다. 용소를 거쳐서 분설담으로 내려섰다. 눈가루가 날리는 것 같다는 분설담의 물보라는 반석의 틈새마다 진분홍 고운 빛에 보라색을 물들인 월성계곡 수달래를 촉촉하게 적셔준다. 진달래인가하면 철쭉인 듯 점이 있고 철쭉인가하면 끈끈한 점액 없이 보송보송 매끈하다. 진분홍도 고운데 보랏빛을 섞었으니 김소월이 봤더라면 어떤 시를 지었을까.

사선대를 찾아 월성계곡을 거슬러 올랐다. 물가의 수달래가 굽이굽이 물길 따라 반석마다 바위마다 벼랑 끝도 마다않고 틈새마다 피어서 별빛으로 무늬 놓고 달빛으로 물들여서 햇볕아래 색을 내어 청아한 물소리에 빛깔 곱게 피었는데 남덕유산 뻐꾸기는 처량히도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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