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해운대 문텐로드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해운대 문텐로드
  • 경남일보
  • 승인 2016.05.0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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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 반달처럼 휜 송정해수욕장의 모습.

◇문텐로드, 치유의 길

옛날부터 태양의 정서보다는 달의 정서와 더 친숙한 게 우리 민족이다. 특히 바닷가 사람들의 삶의 생리(生理)가 달의 주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보니 그 삶이 달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달 속에는 그리움, 어머니, 연인, 꿈, 절대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옹근 모양의 둥근달을 보며 자신의 소망을 담아 비손을 해왔고, 달을 보며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바람에게도 가지 않고/길 밖에도 가지 않고/어머니는 달이 되어/나와 함께 긴 밤을 같이 걸었다’ 감태준 시인의 시 ‘사모곡’에서도 달과 어머니를 동일시했다. 이처럼 달에는 키 큰 계수나무가 있고 그 나무 그늘에는 허리 휜 어머니가 밤마다 자식을 위해 등불을 켜고 자식의 앞날을 밝혀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사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로 이뤄져 있는 현실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어왔는가? 그 현실의 아픔과 부조리, 배신과 사악함으로부터 잠시나마 위안 받고, 현실 속에서 이루기 어려운 소망을 ‘달’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설정해서 그 ‘달’이 현실의 아픔을 씻어주고 마음에 담고 있는 꿈을 이루어주길 기원하는 것이다. 현실적 논리를 넘어서 사람과 하늘(달)이 서로 소통하는 길이라 믿으며 달에게 염원을 빌었는지도 모른다. 달, 바로 현실적 고통을 극복하게 해 주는 힘을 가진 존재로서 절대자이자 우리들의 어떤 아픔도 다 받아서 위무해 주는 어머니다. 그런 존재가 멀고 먼 하늘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이 되고, 힐링이 된다. 달은 바로 정서적 위안이고, 치유인 것이다.

문텐로드! 선텐이라 함은 햇볕에 피부를 태워 몸을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행위이다. 이 선텐이라는 말에서 착안해서 만든 말이 문텐이다. ‘Suntan’이 아닌 달빛을 쐬는 ‘Moontan’, 달빛을 받으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해 걷는 길이 바로 문텐로드다. 선텐이 육체적 건강을 위해 행하는 미용 행위라면 문텐은 정서적, 심리적 힐링을 위한 치유 행위이다. 문텐로드, 듣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것 같고 떠올리기만 해도 그리움과 설렘이 가슴에 밀려오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힐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번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은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문텐로드로 떠났다.

 
▲ 문텐로드 숲길을 걸어가는 탐방객들.


◇환한 대낮, 솔숲에서 만난 달

문텐로드 순환 산책로는 달맞이길 입구에서 시작해, 바다 전망대-달맞이 어울 마당-해월정-달빛 나들목으로 이어지는 2.5㎞로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문텐로드를 빠져나와 청사포항-등대-해마루-달맞이 언덕길(일부는 동해남부선 철길)-구덕포-송정해수욕장-죽도까지 총 6㎞를 걸었다. 옛날의 해운대 달맞이길은 이제 연인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바뀌었고, 달맞이길 아래 있는 솔숲에 문텐로드를 조성해 놓았다. 솔숲과 푸른 바다, 그 사이로 난 동해남부선 정말 그림같은 풍경이다. 키낮은 가로등이 솔숲길을 따라 세워져 있었다. 발등 높이의 가로등, 한참을 걷고 나서야 가로등이 왜 이처럼 땅에 붙게끔 설치해 놓았는지를 알았다. 달밤에 문텐로드를 걸을 때 머리 위까지 오는 키 큰 가로등은 운치있게 내리쬐는 달빛을 다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총총히 심어놓은 가로등 두껍에 떠 있는 달도 아주 다양했다. 초승달, 반달(상현달), 보름달, 반달(하현달), 그믐달 등이 탐방객들이 옮기는 걸음걸음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듯했다. 밤이 아닌 대낮에 문텐로드를 걷는 것이 무척 아쉬운 순간이었다.

소나무 숲길 산책로를 걸으면서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망망대해, 탁 트인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니 환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문텐로드가 끝날 즈음 소나무 숲길을 지나 청사포항까지는 철길로 걸어서 가야했다. 바다와 솔숲 사이에 난 동해남부선 폐선이 아직도 오롯이 남아 있었다. 바다를 건너온 바람한테서 사깍사깍 자갈 깔린 철길을 걸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자갈을 밟는 감촉이 투박하긴 해도 기분은 참 좋았다. 그리고 철길 양옆에는 미역을 말리고 있었는데 짭조름한 냄새와 더불어 빨랫감처럼 가지런히 널어놓은 미역도 하나의 풍경이 되는 청사포, 긴 방파제와 수령 300년이나 된 당산나무가 청사포를 지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소나무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 노거수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배해 온 사람들은 당산나무를 망부송(望夫松)이라고 부르고 있다.

300여 년 전 청사포 마을에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가 살았는데 고기잡이 나간 남편의 배가 파손되어 남편이 익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김 씨 할머니는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 믿고 바위에서 기다렸는데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할머니는 더 먼 바다를 볼 수 있는 소나무 위에 올라가 남편을 기다렸다. 애타게 남편을 기다리다 할머니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의 혼을 위로하고 할머니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소나무를 마을의 수호신 겸 당산나무로 모셨다고 한다.

 
▲ 폐선이 된 철길로 걸어가는 탐방객들.


◇마음이 평온해지는 힐링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서려있는 망부송의 슬픈 전설을 뒤로 하고 와우산 탐방로를 따라 해마루로 갔다. 2005년 APEC 정상회의 개최 기념으로 와우산에 세운 해마루, 가까이는 송정해수욕장과 청사포 등대가 좌우에 펼쳐져 있고 멀리는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해 주는 듯했다. 철길과 솔숲길이 다정하게 오누이처럼 옥색 바닷가로 이어져 있는 탐방로를 따라 도착한 구덕포와 송정해수욕장, 금세 철없는 아이처럼 우리들은 모래톱 위를 뛰어다니며 넘어지곤 했다. 이 순간 무슨 근심, 걱정, 아픔이 마음 속에 머물 수 있겠는가? 모두가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고, 장난꾸러기들이 된다. 웃음과 행복, 그리고 낭만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우리를 빛나게 한다.

송정해수욕장도 마치 반달처럼 휘어져 우리들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했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왔던 고향에 온 듯이 마음이 평온해진다. 문텐로드와 송정해수욕장, 대낮이지만 마음 속에 뜬 보름달에 새겨진 어머니, 고향, 그리움이 우리를 젖게 한다. 모성(母性)도 힐링이고 그리움도 힐링이다.

박종현(시인, 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망부송이라 불리는 청사포 당산나무.
철길 옆 햇살에 미역을 말리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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