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in 풀 스토리] 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직장 in 풀 스토리] 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 김귀현
  • 승인 2016.03.20 0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품 밖의 아이들 지키는 그물망
 
진주시 상대동 소재 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다짐하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최근 들어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주검을 유기하는 등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해 12월 인천에서 아버지의 학대에 맨발로 탈출했던 11살 여아를 시작으로 전국 방방곡곡서 소리죽여 울던 아이들이 발견됐다. 아이를 지키지 못한 책임은 ‘못난 어른’에게 돌아갔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도 호된 야단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담원들은 원망대신 묵묵히 밤을 새고 관할 지역을 넘어가며 현장 조사에 임하고 있다. 한 사례라도 더 끌어안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날도 24시간 열린 학대신고전화를 곁에 두고, 이들의 숨 돌릴 틈을 빌려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고성 사건도 그렇고…손가락질 하시는 분들 많았다. 아이들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했느냐는 꾸지람이다. 그 마음 이해한다. ‘한번 더 챙겼어야 하는데’란 자책 한 번 안해 본 상담 인력이 있을까.”

지난 10일 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4년차 박민영 상담원의 첫 마디였다. 진주시 상대동 소재 기관 건물에는 박민영 상담원을 비롯해 총 8명의 상담원 자리가 있다. 책상은 비어있는 시간이 더 많다. 상담원들은 각 지역에 흩어져 누적 사례를 관리하거나 신생·재발 사례 현장조사에 나선다. 이유는 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의 뿌리에서 찾을 수 있다. ‘아동학대예방센터’로 시작한 기관 업무는 학대 사례 신고 접수부터다. 학대 의심 등 모든 사례에는 현장 확인이 우선이다. 학대 사례로 판정난 경우 당사자 상담과 치료, 보호를 도맡는다. 상담·치료의 대상은 학대 아동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대 행위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이렇다보니 아동을 학대 가정에서 분리하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교사 등 신고 의무자 대상 교육도 기관에서 직접 진행하고 있다. 긴 시간을 두고 만나야 할 사람이 수십 명씩 꼽히기도 한다.

박 상담원은 “술술 풀리는 사례는 잘 없다. 눈에 보이는 도움을 드리는 일이 아니다보니 조사원증만 보여드려도 질겁한다”며 “우리에 대한 위협만큼이나 가정에서의 거부가 벽이 된다”고 말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들어오는 신고 접수에 한해 신고자에게 꼭 인지시키는 사항이 있다. 사례의 특수성 때문에 신고 철회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신고가 접수된 가정이라면 행위자나 학대 아동이 조사 거부를 해도 직접 대면 조사를 거쳐야 한다. 때로는 상담원들간 ‘영화같은 일’을 겪는다고들 한다. 박 상담원의 경우 학대 사례 판정을 위해 나섰다가 아동의 아버지(학대 행위자)를 유치장에서 만나기도 했다. 아버지는 학대에 앞서 이미 다른 죄목 적용으로 경찰에 붙잡힌 상태. 경찰 측 양해를 구해 벽을 사이에 두고 조사를 진행해야 했다. 수 년간 관리해 온 사례를 두고 고민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성 학대 사례였다.

그는 “학대 행위를 겪어낸 아이 손을 잡고 나오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끔찍한 일을 겪은지 만 이틀도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약국에서 사후 피임약을 샀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임 효과가 떨어지니 최대한 빨리… 아이에게 약을 건네면서도 만감이 교차했다”고 전했다. 상담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성학대 사례에 노출될 경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학대 아동의 사망으로 사례가 종결될 때도 마찬가지다.

기관에서 맡는 사례는 연간 2000여 건. 상담원들이 적게는 한 달에서 많게는 수 년 동안 맡고 있는 케이스가 1인당 80~100여 건이다. 신고 대기자가 상주 중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근무 시간이 아닌 새벽에 사례 관리에 나서기도 하고, 외근자를 대신해 타 가정에 찾아가기도 한다. 지치고 바쁜 일의 연속이지만 이들은 벅차다는 표현은 좀처럼 쓰지 않는다. 외근 업무의 절반은 긴장을 동반한다. 보람만큼 힘든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여전히 현장에서 뛰고 있을까.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 때 보람을 느낀다. 이날 박민영 상담원은 한 학대 행위자가 했던 말을 빌렸다. 한 아이 아버지는 “아이에게 이렇게 하는 것(학대 행위)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선생님 덕분에 바뀌었다’는 말이 오늘도 상담원을 일으켜 세운다.




경남서부_박민영 상담원2



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박민영 상담원 인터뷰
“행복한 가정을 만들면서 스스로는 단단해지는 일”



-기관에서 상담원으로 일하기 위한 자격요건은

▲우선 각 지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채용하는 경우가 있고, 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처럼 사회복지법인 하에 있는 곳은 법인이나 재단에서 채용하기도 한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소지자여야 하고 관련 학사 졸업자의 비율이 높다. 그 외 임상심리 등 관련 자격증이 있으면 우대한다.

-직업 입문 계기는

▲지난 2011년에 학대 행위자에 의한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다음해인 2012년 기관 인수 과정 중 대학생 봉사자를 모집했다. 당시 대학 4학년이었는데 1년 간 봉사활동을 해본 뒤 이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졸업 직후 들어와 올해 4년차가 됐고 팀장을 맡게 됐다.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을 맞닥뜨린 적 있나

▲늘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현장에 나갈 때는 스프레이나 전기충격기 등 최소한의 호신 기구를 지참한다. 한 번도 써본 적은 없지만. 주취자와 상담을 해야 하거나 상담 중 학대 행위자가 격분했을 때는 긴장하게 된다. 여러가지 이유로 늘 2인 1조로 움직인다. 육체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단단해지고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의 ‘직업병’은

▲전화가 오면 심장이 두근두근댄다(웃음). 혹시나 관리하던 사례에서 재학대가 발생했을까, 혹은 새로운 사례가 생겼다면 아동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을까 긴장한다.

-상담원들의 공통적인 마음가짐이 있다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학대 행위를 단절시켜서 가정의 원 기능을 돕는 데는 주로 기다리고 설득하는 일이 필요하다. 지칠 수 있는 일들이다. 사명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귀현기자 k2@gnnews.co.kr

 

▲ 상담원들이 적게는 한 달에서 많게는 수 년 동안 맡고 있는 케이스가 1인당 80~100여 건이 될 정도로 힘들지만 동료애는 어느기관 못지않다고 설명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