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포럼] 시인 박연복과 작곡가 고승하
[경일포럼] 시인 박연복과 작곡가 고승하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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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점석 (창원 YMCA 명예총장)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달자는 목소리로, 이제는 시민이 참주인으로 나서야 할 때”라는 가사를 만들어서 고승하 선생에게 드렸더니 ‘바보의 꿈’이라는 제목의 멋진 노래를 작곡했다. 며칠 후 직접 노래를 불러서 녹음한 CD를 주었다. CD에는 자신이 작곡한 다른 노래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혼자 감상하던 중에 정작 감동받은 노래는 ‘바보의 꿈’이 아니고 ‘봄나드리’라는 노래였다. 가사에서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고 편안해서 따라 부르기가 쉬웠다.

“봄은 겨울에게 겨울은 봄에게, 감사하네 봄이 온다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봄이 내게 찾아와 따뜻한 얘기를 시작하네.”

봄이 겨울에게, 겨울이 봄에게 감사하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분명 봄과 겨울이 정답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맑은 영혼을 가졌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승하 선생에게 지은이가 누군지를 물었더니 전신 뇌성마비인 1급 장애시인 박연복이라고 했다. 1급 장애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썼다는 게 이해가 안됐다.

1973년생이니 나이가 42살이다. 장애인문예협회 문학지인 솟대문학 2001년 여름호에 그의 시 ‘너였음 좋겠네’가 추천시로 당선돼 등단했는데 벌써 시집이 3권이다. 어릴 때는 시인 이선관으로부터, 얼마 전부터는 시인 김륭으로부터 시작지도를 받았다. 30년전 재활치료 프로그램으로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 사이에 숟가락을 끼워 식사하거나 연필을 끼워 글을 쓰는 법을 배웠다. 이때부터 엄지발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시집은 연필로 썼고 두 번째 시집부터는 키보드로 썼다.

그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를 쓴다”고 한다. 그가 지은 ‘어머니를’은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머니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날 밤 우시던 당신 늘 그립습니다. 철모른 그 시절 여자친구가 더 좋았는데, 이별을 맛보고 나서는 더 그립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그를 위한 음악회를 열기로 했다. 작은교회연합회에 소속돼 있는 세 교회가 그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연습을 했다. 두세 달의 준비과정을 거쳐서 10월 18일에 열렸다.

마산 가포고개를 넘으면 오른쪽에 국립마산병원 별관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서 산 밑의 한 굽이를 돌면 평지로 내려오는데 마산가포고등학교와 가포신항 입구가 있다. 다시 한 굽이를 돌면 가포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정문 옆길로 10m 정도만 가면 비닐하우스 3동이 나타난다. 흔히 볼 수 있는 농막이다. 이곳이 음악회가 열릴 ‘정금교회’이다. 바닥은 그냥 맨흙이었고 의자는 접이식이다. 삐까뻔쩍한 일류급 뮤직홀에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소박함이 이날 행사의 취지와 안성맞춤이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는 박연복 시인은 제일 앞자리에 있었다. 평소에는 예배처인 농막 안에는 음악회에 참석한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김륭 시인의 축시, 선린복지재단 임중기 원장의 인사말에 이어서 한교회, 하나교회, 정금교회 교인들이 차례차례로 노래를 불렀다. 지역가수인 배진아, 동요 부르는 여고시절과 철부지 역시 박연복 시인의 노래를 불렀다.

농막 안은 감동의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었으며 박연복 시인은 더할 수 없이 기뻐했다. 음악회를 마치고 나서 그의 세 번째 시집인 ‘제비꽃’을 받았다. 표지 안쪽에는 발로 쓴 서명이 한 페이지 가득했다.

 
전점석 (창원 YMCA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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