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빈대
땅빈대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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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란 (수필가·경남과기대 평생교육원 수필 강사 )
손정란
잗다랗게 여기는 풀들이 자라고 꽃을 피우는 소리를 한 번이라도 귀여겨 들어본 사람이 있을라나. 그 소리는 심장의 귀를 기울이고 가슴으로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튤립이거나 양귀비꽃을 처음 보고 놀라워했던 일이 까마아득한데 살아갈수록 풀꽃들에게 더 마음이 쏠린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풀들을 눈여겨 보암직하다. 어떤 것은 길녘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지르밟아 짓이겨져도 앙증맞은 꽃을 활짝 피운다. 어떤 것은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갸우스름하게 고개를 내민다. 어떤 것은 장대추위가 지나가도 볕바른 곳에서 푸른 잎을 꼼지락거린다.

그냥 제멋대로 나서 자라는 풀은 해 쪽으로 잎을 펼치고 하늘을 쳐다본다. 사람은 옆옆이 돌아보면서 살아가고 풀은 늘 위로 뻗으며 산다. 풀이 위로만 자라려고 하는 것은 햇볕을 맘껏 받으려 함이다. 드물게 땅에 납작 붙어 자라는 풀도 있다.

지나새나 땅바닥에 나부죽이 엎드려 밭이거나 다님 길에 사는 한해살이풀. 땅 위에 퍼진 잎 모양이 빈대처럼 보여서 땅빈대라 부르는 풀이다. 땅빈대는 땅에 바짝 붙어서 기는 힘이 아주 옹골지다. 어디든 뿌리만 내리면 그 자리가 제바닥이다. 줄기 가운데의 한 곳에서 거미줄이거나 바퀴살처럼 길게 자라면서 마디마다 또 퍼져 나간다. 꽃은 하도 조그마해서 요리조리 아무리 눈을 대고 들여다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땅빈대의 줄기를 자르면 우윳빛 즙이 나온다. 땅빈대를 사마귀풀이라 알고 있던 어린 시절, 손등에 드문드문 생긴 물사마귀가 어느 새 깝북 번지게 되면 줄기를 따깜질하며 즙을 바르곤 했다.

땅빈대는 나부랑납작하게 기면서도 햇살을 그늑하게 받는다. 땅빈대가 사는 곳에는 다른 풀이 싱싱하게 견뎌내지 못한다. 해포이웃 하여 사는 터라도 서로 겨루다가 쓰러지면 굳센 풀의 그늘에서 곱송그리며 좁혀 지내게 된다.

장찬밭을 매는 댕돌같은 농사꾼의 손에 모지락스럽게 뽑혀 나엎어지는 땅빈대가 잘겁하여 들숨 날숨 없이 누워버린다. 그러다 하루해가 저물어 깜깜나라가 되었을 때, 개밥바라기 빛을 받으며 갑신 숨을 고르고 촉촉하게 내리는 이슬에 몸을 씻는다.
 
손정란 (수필가·경남과기대 평생교육원 수필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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