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兄)
형(兄)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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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수필가)
이홍식

아버지 앞에서 아들 칭찬을 하면 아버지는 좋아하지만, 형 앞에서 동생을 칭찬하면 형은 서운한 법이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는 동네 골목대장은 든든했다. 다른 동네 아이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와 거들먹거리면 잽싸게 뛰어가 일러바치곤 했다. 그러면 형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슬렁거리면 다른 동네 아이들은 슬슬 눈치 보며 돌아가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고, 그런 형 옆에 서서 강아지가 지나가는 개를 보고 어미 개 앞에서 으르렁대는 것처럼 나도 그네들에게 으스대며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 기억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형이란 이름만 떠올려도 든든하고 함께 있으면 때로는 아버지보다 좋다. 내가 잘못 한 일이 있어 꾸지람을 당하거나 몇 대 얻어맞아도 돌아서면 서운함을 잊고 보고 싶은 게 형이다. 언제든 몸 비비고 기대는 고목처럼 편하다. 또 그런 형은 동생이 다소 잘못한 일이 있어도 너그럽게 보듬어주고 어려울 때 잡고 있던 동생 손을 결코 놓는 법이 없다. 그것이 형의 모습 아닌가.

핏줄을 나눈 형이 아니라 사회에서 맺은 형과 동생의 관계라 해도 형제 못지않은 경우가 많다. 어쩌면 자주 못 보는 가족보다 눈뜨면 만나는 관계가 더 가깝게 느껴지고 삶에 위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형들은 옛날 모습을 잃어간다. 사는 게 각박해서인지는 몰라도 내 어릴 때 형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 위로 형이 있지만, 작은형은 이 세상사람이 아니고 큰형은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보기 어렵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애틋한 추억밖에 남은 게 없다. 자연히 사회에서 만나 정들어 내가 형으로 부르는 순간(쉽게 불러서도 안 되겠지만) 그는 나에게 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잡고 있던 손을 너무 쉽게 놓아버린다. 남남끼리 만나 맺은 형과 동생의 관계라 해도 상황따라, 때에 따라, 올라오는 기분 따라서 수시로 변하며 손을 잡기도 하고 놓아버리는 게 요즘 형들의 마음이다. 설령 그 형에 비해 동생답지 않은 꼴을 하고 있더라도 쉽게 손을 놓아버리는 형을 동생은 기억하지 않는다. 지금도 바람이 있다면 어릴 적 옆에 서서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가게 하던 형다운 형을 만나고 싶다. 옛말도 있지 않은가. 형 만한 아우 없다고.

 

이홍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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