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0)
  • 경남일보
  • 승인 2016.06.0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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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0)

저녁을 먹고 두 사람은 이불 밑에 발을 묻고 마주 앉았다.

밥을 먹고 나자 다시 호남의 일이 목전으로 대두되었지만 더 여위고 까매진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양지는 이 가여운 어머니를 괴로운 일, 슬픈 일에서 할 수만 있다면 촌각이라도 더 멀리 격리시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시 말을 삼가기로 한 채 어머니 쪽 말문이 먼저 열리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어머니 역시 먼저 입을 열지 않고 별로 필요하지 않은 다른 일손만 놀리며 서먹한 분위기를 견디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계속 되자 어머니는 생각 난 듯이 몸을 움직여 여행가방을 뒤지더니 이것저것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신문지로 싼 네모난 작은 꾸러미를 앉은 채로 손을 뻗어 반다지 속에다 깊이 넣으려다 역시 생각 난 듯이 양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늬 아부지 안오싰더나?”

역시 아버지 일이 먼저였다. 양지는 긍정이 되게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얼마를 약속했는데? 고목도 다 베어 팔고 베틀까지 전시관에 갖다 주기로 했다며?”

무엇 때문에 거금이 필요한지 이유에 대해서는 서로 말한 바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양지가 이미 알 것은 다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눈치였다. 어머니의 눈이 조금 커졌다가 짐작을 한 듯 숨길 것 없다는 빛을 띄우며 가라앉았다.

“늬아부지가 그라시더나? 염치하고는 참 야마리꽁지 다 빠졌네”

“집까지 팔자고 엄마가 허락했어?”

“집도 보러 왔더나, 아부지 계실 때?”

양지는 어머니의 기색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양지가 말하기 전에 어머니가 순순히 입을 열었다.

“차제에 내가 그러고 싶었다. 숭하고 은성시럽어서”

양지는 그냥 듣고 있었다.

어머니도 사람이고 여자며 참을성이 조금 남다를 뿐인 평범한 인간이다. 감정의 흐름에 따라 창가에 앉고 싶고 산을 찾고 바다를 보고 싶은 것이 비단 호사가들의 취향만일까.

더구나 척박한 땅에서 기 펴지 못하는 생명에게 새 보금자리를 선사하고 싶은 것은 한 어미가 낼 수 있는 용기의 기본 모습일 것이다. 남편을 자신의 울안에서 분리시키기로 한 발상은 엄마가 이제까지 했던 생각 중에서 기중 참신하고 당당하게 느껴지는 결심이었다.

조금 있다가 양지는 슬쩍 면소재지의 그 불결한 화장실에서 숨죽이며 들을 수밖에 없던 이야기를 끌어 붙였다.

“최 태복 씨가 소원 푼 댓가로 천오백을 주기로 했다며?”

“소원? 흥…”

참 의외의 반응이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양지는 어머니가 보이는 차가운 웃음을 이해 안 되는 표정으로 마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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