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1)
  • 경남일보
  • 승인 2016.06.0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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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1)

뭐라 이을듯하던 말을 삼키며 어머니는 뒤적거리던 가방 속으로 마저 신경을 돌렸다.

“와, 뭐가 어떻게 됐는데?”

양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참을 수 없다는 기색으로, 그러나 여전히 침착한 음성을 흩뜨리지 않고 어머니가 말했다.

“하기야, 원 없이 자기 할 짓 다해 봤시니 소원 풀었다칼 수도 있겠제. 약속 따지믄서 돈을 떼묵자니 장부일언이 중천금이고…. 사주팔자를 우찌 쏙일 끼고. 자긔 몸 하나 거천도 못할 늙은이가 혹만 하나 더 달게 됐제 뭐꼬”

아버지는 또 천오백만 원 짜리 딸을 하나 더 보탰단 말인가. 그렇다면 호남이 부르짖던 소원성취는 와전이었다. 양지는 할 말을 잃었다. 뇌수가 쑥 빠져버린 듯 사고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그 허망한 집념, 집념…. 억지로 웃는 아버지의 웃음을 호남은 제 성격대로 단정을 하며 아버지가 ‘소원성취’했다는 단어로 목청껏 암상을 부린 것이다. 아, 어째서 이런 일이…. 양지는 하늘에다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버지가 이룬 소원성취의 여파로 빚어진 호남이네의 일은 이제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양지는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무심코 놀린 상처의 통증 때문에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럴 수는 없어. 이래선 안 돼!”

양지는 손이 아픈 것도 무릅쓰고 주먹으로 벽을 쥐어박으며 진저리를 쳤다. 어머니는 발작적인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며 두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이런 낯 부끄럽은 일이 어데 있노. 미안해서 내가 쥐구녕에라도 들어가야겄다. 이왕 저질러진 일인데 너그 아부진들 신간이 편하겄나. 다 내 죄다, 그만 진정하거래이. 인자 꿈깰 때가 된 것 같은깨 진정하거래이. 어차피... 마지막을 너가부지 체면이나 세워디리야지. 사나일언 중천금이라꼬 약속은 약속인께”

양지는 위무랍시고 진드기처럼 들어붙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곤 쏘아보면서 내뱉었다.

“언제나 그 소리지, 내 죄! 내 죄!”

“그라모 우짤것고. 내보고 우짜란 말이고 으이?”

이해 받을 곳 없는 절통함으로 으깨진 비명소리가 어머니의 찌푸린 오만상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할 소리는 다해야겠다는 결심처럼 선선하게 덧달았다.

“니한태 갔다 오는 길에 째보아재한테도 갔던 갑더라만 딱부리 장승 모냥으로 걸대 떡 벌어진 아들 자슥 하나만 있었어도, 전사에 지내던 정리 서껀 너가부지가 누 때문에 눈을 그리 다칬는데, 참말로 그 아재는 너가부지한테 그라모 안되는데, 그런 괄시를 받은 이유가 뭐이것노. 내밀었던 손이 부끄럽아서 엉에 미끄러져 자결이라도 하고 싶었다꼬 카시는데. 이 나이에 돈 기백 채변도 안돼서 그 수모를 다 당한 걸 생각하모. 너그 아부지만 그르다칼 면목이 없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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