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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83)<143>경남문단에 최근 발표된 소설과 수필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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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02  19: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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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섬길 따라 이야기’(거제스토리텔링작가회)의 두 번째는 ‘고려촌의 잔물결을 따라가다-고려촌 체험길(고혜량)’을 읽는 차례다. 이 야기는 견내량 건너 거제 관문인 오량역(오량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량성은 고려수도 개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역을 포함하고 있어서 1000년 가까이 거제도의 관문 역할을 했다. ‘처마에 매달아 놓은 낡은 풍경’ 같은 곳이기도 한데 ‘고려촌 문화체험길’이 바로 그런 풍경이다. 거제의 역사가 애환의 굴렁쇠를 돌리는 것이라면 이 체험길에서부터 그 굴렁쇠는 굴러갈 수밖에 없다.

오량성을 뒤로 하면 겨우 차 한 대 지날 만한 작은 오솔길이 기다린다. 조금 오르면 안치봉으로 가는 등산로가 보인다. 의종의 대비(大妃)를 모셨던 대비장이 있어 안치봉이라 불린다. 이어 둔덕기성이 가까워질수록 밤나무가 여기 저기 눈에 띄고 낮게 깔린 풀 사이로 지난 해 떨어졌던 밤송이가 뒹군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사적 509호로 지정된 ‘둔덕기성(일명 폐왕성)’의 성벽이 눈에 든다. 이 성은 거제도 24개 성곽중 대표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현문식 구조인 동문지(東門地)는 성벽축성법의 변화를 연구하는 데 학술적 가치가 크다. 7세기 신라시대 축조수법을 알려주는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성내에는 천지가 있고 북측에 제단이 있어 800여년간 주민이 해마다 산신제를 올렸고, 1972년 새마을운동 당시 미신을 조장한다 하여 폐지되었으나 지금은 둔덕향인 주관으로 의종추념제를 지낸다. 아시다시피 둔덕기성은 정중부의 난으로 의종이 밀려나 유배왔던 곳이라 폐왕성 또는 피왕성으로 불리는 곳이다. 의종은 이곳에서 3년간 반란군의 추적을 감시하며 복위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꿈이었고, 그를 따라왔던 문신과 귀족들 가족들이 죽어서 묻힌 방하리 고려총을 남겼을 뿐이다.

그 아래는 둔덕면 옛 중심지 거림마을이 나온다. 의종의 명으로 극비리 심겨졌던 넓은 보호림이 있어 마을 이름도 거림(巨林)이다. 다음으로 ‘둔덕시(詩)골 농촌체험센터(구 둔덕초등학교)’가 나오는데 왜 ‘시(詩)’가 들어갔을까? 청마 유치환 동랑 유치진의 고향마을이기 때문일 터이다. 아니나 다를까, 산방산 쪽으로 들어가면 청마 유치환 선생 기념관이 나온다. 이후는 작품을 그대로 옮겨볼까 한다.

“선생님이 영면하고 계신 묘소로 향한다. 청마의 부모님, 그리고 부인 권재순 여사와 함께 잠들어 계시니 평화로워 보인다. 시인이 잠들기에 참 어울리는 곳이다. 묘소 입구에는 선생님의 흉상이 세워져 있고, 선생님의 여러 작품 시비가 전시되어 있다. 잔디 깔린 묘소 주변은 잘 정돈되어 있는 작은 공원을 연상시킨다.”

여기까지 읽은 뒤 필자는 ‘고려촌 체험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고려 의종의 거제 유배길은 스스로의 꿈과는 관계없이 복위를 꾀하는 쪽으로 나가지를 못했지만 그의 염원은 남아 거제 유적지를 기반으로 하는 거제 주민들의 새로운 에너지로 승화되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유배문학이 적정의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유배된 자들의 일생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소리없이 사라져 갔음에도 그 흐름의 순혈 속에 인간 보편의 소망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가지는 만큼 유익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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