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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기행 (82) 지리산 대원사‘방장산 대원사’에서 6월의 향기 만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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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06  20: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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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원사


6월은 6·25가 아물지 못하는 상처가 되어 민족의 가슴에 응어리져서 잊지 못하는 화약 냄새가 있고, 6월항쟁의 매캐한 체류가스 냄새가 있고, 호국의 영령들께 올리는 헌향의 향내가 있다. 지금은 세월의 저편에서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보리타작 뒤끝의 겉겨 태우는 구수한 냄새도 6월의 내음이다. 그래서 6월은 빛깔의 계절이 아니라 ‘내음의 계절’이다. 잊어서는 안 될 잊혀져 가는 6월의 냄새가 짠하여 골 깊은 산사 지리산 대원사를 찾아 향이라도 사를까 하고 집을 나섰다.

그래서 35번 고속도로 단성요금소를 나와 옆도 뒤도 안 보고 덕산 5일 장터를 지나 59번 도로를 따라 삼장면 명상삼거리에서 대원사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여 마을회관 들머리에 차를 세웠다. 이번에는 꼭 찾아봐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누가 부르기라도 하듯이 평촌마을회관부터 찾았다. ‘삼장사지 3층 석탑’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있어야 할 할머니들도 안 계시고 길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부지깽이도 일어선다는 농번기인데 그러려니 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무작정 마을 앞의 다리를 건너니 들녘 한편에 홀로 선 석탑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삼장사지의 옛 흔적은 찾을 길이 없고 작은 논이 층을 지워 맞물린 틈새의 평평한 바닥에는 키가 작은 잡초가 무성하게 우거지고 야트막하게 사면을 둘러친 철책의 울타리 안에서 경남도 유형문화재 31호인 신라시대 석가세존의 사리석탑은 천년세월을 지키며 외로이 홀로 섰다.

훤칠한 높이에 튼실한 탑신으로 당당하고 웅장하며 옥개석의 곡선에서 옛 멋이 풍겨난다. 지대석과 하대중석은 하나의 돌로서 선도 곱고 결도 고운데 하대옥석이 살포시 눌러앉아 석탑의 풍모는 균형의 조화와 선의 아름다움이 문외한의 눈에도 기막히게 절묘하다.

본래는 5층 석탑으로 추증된다는데 부재의 유실로 3층으로 복원했다지만 균형의 조화는 본살같이 아름답고 옥개석의 훼손이 군데군데 있지만 4단 받힘선과 우주의 조화가 참으로 멋스럽다. 얼마나 많은 바람이 있었기에 얼마나 간절한 소원이 있었기에 불심모아 탑을 세워 빌고 빌며 탑을 돌던 옛사람은 간곳없어 언제쯤이면 향불이 다시 피고 목탁소리 범종소리 염불소리 들리려나. 평촌다리를 건너서 대원사계곡을 따라서 깊은 골로 들어섰다.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하늘을 뒤덮은 산길은 수직의 벼랑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이어지고 아래의 계곡은 크고 작은 바윗돌이 빼곡히 앉았건만 자리 놓고 다투는 인간사를 비웃는 듯 마주앉아 정에 겹고 물러 앉아 양보하고 틈새주어 배려하니 흐르는 계곡물도 비켜가고 돌아가며 구슬 같은 물보라를 찬란하게 튕기면서 청아하게 소리 낸다.

하얀 화강암 난간의 대원교를 건너서자 계곡은 길 오른쪽으로 나란히 다가서며 고래 등 같은 바윗돌이 암반과 어우러져서 계곡의 폭도 넓어졌다. 널따란 도로 가운데로 ‘방장산 대원사’라는 현판을 달고 단청이 화려한 일주문을 지나 낙락장송이 계곡을 뒤덮고 남은 그늘의 한 자락을 내어주는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자연석을 맞대어 깐 돌계단위로 대원사로 들어서는 문루가 대문을 활짝 열고 길손을 반기는데 빤하게 바라다 보이는 우뚝한 대웅전의 열려진 문안으로 본존불이 가만히 굽어보고 계셨다.

문루의 돌계단을 올라 마당어귀에 발을 내딛고 합장의 예를 올리고 바라보는 풍광은 한눈에도 절경이다. 천년고찰 대원사가 그림같이 앉았다.

대웅전엔 닫집 없이 후불탱화 장엄하고 수미단의 본존불은 문수보살 보현보살 좌우로 협시하고 불벽 뒤의 석가탱화 사바세계 중생제도 한결같은 자비발심 천년세월 이어오며 범종소리 예불소리 지리산에 여울진다. 대웅전과 추녀를 맞댄 원통보전은 사면팔작지붕으로 고건축의 정교한 균형미와 날렵한 멋스러움이 극치를 이루는데 안으로 들면 관세음보살상의 수미단 불벽 뒤에도 천수천안관세음보살 탱화가 커다랗게 모셔졌다.

 
   
▲ 삼장사지 3층 석탑


원통보전 뒤편으로 가지런하게 장독대가 놓인 언덕을 오르면 자그마한 ‘산왕각’이 앉았다. 여느 절집의 산신각이다. 지리산의 주봉 천왕봉의 성모천왕을 산신으로 모시고 있어 ‘산왕각’이다. 산왕각을 나서서 명부전으로 들었다. 지장보살상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 좌정한 십대제왕상은 여느 절집의 위압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비구니의 가람이라서 일까, 분단장을 곱게 하고 온화하고 자애롭다. 덕숭산 수덕사와 가지산 석남사와 함께 지리산 대원사는 우리나라의 비구니의 삼대사찰이다. 정갈스러워 놀랍고 정숙한 분위기에 놀랍고 멋스러운 정취에 놀랍다. 이를 두고 대원사 3경(三驚)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데 말소리조차 조심스럽고 발자국 소리가 날까봐 더욱 조심된다.

선방이 있는 언덕위에 646년 신라의 자장율사가 6.6m의 높이로 세운 보물 제1112호인 대원사 다층석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랗게 우뚝 섰다. 철분함유가 많아서 온통 황금색으로 물들은 다층석탑은 호리호리한 몸매로 하늘 높이 쭈뼛한 9층 석탑이다. 1989년 해체 복원을 할 때에 58과의 부처님의 사리가 나왔다니 올해로 1370년 전에 조성한 사리탑이고 보면 기나긴 세월을 인간의 세수로 어찌 가늠하랴만 만고풍상이야 오죽이나 했을까. 죄업 빌며 합장하고 소원 빌며 절을 하고 발원하며 탑을 돌고 백팔번뇌 성불득도 빌고 빌던 사부대중 영험함이 없었으면 오늘이 있었겠나. 정조 8년에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새겨진 배례석 앞에서 예를 올리니 홀을 감싸 쥔 문인상이 탑신의 네 면에서 근엄하게 지켜본다. 대원사를 나와 용소를 찾아서 소나무 숲길의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쉬엄쉬엄 걸었다. 끝 간 곳을 알 수 없이 나직나직하게 층을 이루고 있는 널따란 반석위로 명경같이 맑은 물이 폭포와 소를 이루고 있어 정작 용소가 어느 것인가를 알 수가 없다. 물이 맑아서 바닥이 훤하게 들여다보이지만 바윗돌의 크기가 아니고서는 깊이조차 가늠하기가 어려운데 태초의 모습으로 오늘을 반기지만 질곡의 역사 속에 사연인들 오죽하고 애환인들 오죽하겠냐만 속 깊은 지리산은 정작으로 말이 없다.
   
▲ 대원사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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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
작가의 변
요즘의 신문이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경향이 바꿔서 정독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이틀만 읽거나 사진만 훑어보는 추세라서인지 이번 글도 사진만 크게 싣고 정작 원문을 많이 삭제편집 해버려서 글의 이음이 어긋나고 전후의 뜻이 연결되지 않아서 작가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하여 원문을 트위트에 올리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

(2016-06-08 18: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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