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5)
  • 경남일보
  • 승인 2016.06.10 1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1 (165)

“명줄이 찔기기는 시삼노고 사주팔자는 독새, 부독새보다 더 독한 사주팔자를 타고나서 죽지 않고 살라커등 모래가 되라. 모래가 되지 않고는 질식할 듯 한 모래밭을 벗어 날 수가 없다. 꼭지에서 마치 누가 시키는 데끼 그런 머리가 열리더라. 푹푹 찌는 모래밭, 끝도 안 보이는 곳을 지쳐 쓰르질듯이 헤매 안댕기 본 사람은 그 팍팍한 심정을 다 모린다. 지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는 기 많다 캐도 이해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양지에게 더 많은 내용을 요구하며 보채지 말라는 듯, 결구에다 단호함마저 내비친 어머니는 장롱에서 양지의 베개를 꺼내 요 위에다 놓아주었다. 들어야겠다고 작정한 이야기는 나온 게 없었다. 양지는 내친 김에 물꼬를 더 크게 틔워야했다. 이대로 덮어 버리면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몰랐다. 굳어있는 어머니의 모성에다 온기를 어룻는 방법은 직성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돌리는 수밖에 없다.

”참 냉장고에다 쇠꼬리 하나 사다 놨는데“

”올 때마다 그런 건 뭐 한다꼬 자꾸 사 오노“

혼자 소리처럼 구시렁거리며 어머니는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면 가기 바쁜 딸에게 진국 한 그릇이라도 먹여 보내기 위해서 어머니는 얼른 그걸 솥에다 넣고 불을 지필 거였다.

양지는 장작불 지피는 소리를 들으며 책상 위로 눈길을 돌렸다. 전에 부친대로 뜯지도 않은 영양제통이며 선물 상자가 그대로 놓여있다. 정담을 나누며 선물을 풀어 확인할 상대가 없었던 증거다. 솥을 가시고 물을 펴내고, 물을 퍼붓고 물이 모자라는지 다시 펌프질 소리가 들렸다. 그 순서 정연한 정다운 소리들을 따라 다니는 동안 어머니에 대한 날선 서먹함도 조금 사그라졌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생을 살뿐이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관념으로 관계는 더 얼마나 곤혹스러워지던가. 저 혼자 맺힐 것은 맺혔고 풀릴 것은 또 저 혼자 풀린 가운데 관계는 연속되고 세월은 간다. 남이면 굳이 알 필요도 없지만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양지는 고개를 저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상념들을 쓸어버리며 모로 돌아누웠다. 더도 말고 이 평화 이대로, 이 대로면 족해. 하지만 삭신을 녹이며 스며드는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면 느낄수록 지금의 이 복잡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우우 우우우. 또 나목 숲을 휘몰아서 된바람 치는 소리가 들렸다. 와장창. 무언가의 충격으로 옹기그릇이 박살나는 소리도 났다. 기와갈이 시기를 놓친 지붕에 비 가림으로 덮은 비닐포장이 밀리면서 기왓장이 떨어진 모양이다. 질풍처럼 몰려오는 돌개바람은 온 집안을 휘돌다 아래채의 문짝도 덜컹덜컹 연속으로 흔들어댄다. 저 만큼 멀리로 가서 잠잠하던 바람은 어느 새 잊은 물건이라도 찾으러 온 듯 또 분탕을 치며 온 집안을 감돌아 다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