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신라 왕의 길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 신라 왕의 길
  • 경남일보
  • 승인 2016.06.0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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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시인, 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 왕의길 중 가장 아름다운 신문왕 호국행차길.


◇충·효의 길, 왕의 길

왕의 길, 어딘가 모르게 계급적인 냄새가 나고, 길 위엔 값비싼 융단이라도 깔려있을 것 같아 선뜻 내키지 않은 걸음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필자는 눈에 익은 고샅길이나 지게길이 정겹고 포근하게 느껴지지만 ‘왕의 길’은 어쩐지 좀 딱딱하고, 너무 화려할 것 같다는 생각을 들었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신라, 왕의 길’ 길섶에 서린 호젓함을 읽고, 길모퉁이마다 숨은 얘기와 전설을 듣고 보니 왕의 길이 ‘왕이 지나간 길’이 아니라 ‘세상사람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길’이란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어서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왕의 길, 이 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 땅의 주인이면서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자긍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면 행복감을 충전함과 더불어 힐링을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힐링여행을 떠났다.

김춘추로 더 잘 알려진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김유신 장군과 함께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했고, 무열왕의 아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노략질이 심했던 왜구들을 퇴치하기 위해 문무왕은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바다에 시신을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기게 된다. 그 유언에 따라 감포 앞바다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 문무왕을 묻게 되는데, 경주 월성에서 동해바다 문무왕릉까지의 장례 행차길이 곧 왕의 길이다. 그리고 아들인 신문왕이, 죽어서도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있는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기리고, 자신 또한 태평성대를 꿈꾸며 문무왕릉을 찾아와 신라의 보배인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기 위해 행차한 효와 충이 서린 길이 바로 왕의 길이다.

 
▲ 옥대의 전설이 서린 용연폭포의 장엄한 모습.


◇백성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힐링의 길

왕의 길은 편의상 4구간으로 나누는데, 이 중에서 3구간인 추원마을에서 기림사까지의 ‘신문왕 호국 행차길’이 가장 아름답고 걷기에도 좋은 코스이다. 추원마을-모차골-수렛재-세수방-불령봉표-삼거리-용연폭포-기림사-기림사 주차장(약 9㎞)까지의 코스, 우리가 탄 버스가 왕의 길 초입인 추원마을을 지나쳐서 한참이나 헤매다가 마침 지나가는 경찰차를 발견하고 길을 물으니 경찰아저씨께서 추원마을까지 직접 칸보이를 해서 우리 일행을 마치 왕처럼 접대해 주셨다. 일순간 우리는 모두 오늘 하루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안온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왕의 길을 탐방할 수 있었다. 탐방로 초입은 시멘트길이라 좀 팍팍했다. 모차골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우리들의 탐방을 축하해 주는 듯 고운 흙으로 깔아놓은 흙융단이 탐방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가 다녔다는 모차골은 ‘신문왕 호국행차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닌 길이라서 그런지 길의 너비가 산길인데도 신작로처럼 확 틔어 있었다. 지난 해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이 길섶에 수북이 쌓여 우리 일행의 행차를 맞이해 주는 듯했다. 수레가 다닌 고개라는 수렛재, 급한 경사길에서 수레를 끌던 말들이 구부러졌다(넘어졌다)는 말구부리, 조선 순조 때 입산을 금지한다는 왕명을 새긴 불령봉표가 세워져 있는 불령 고개, 신문왕이 이견대에서 동해바다 해룡으로부터 옥대를 얻어 오다가 잠시 쉬면서 세수를 했던 곳인 세수방 등에 대한 해설을 안내판에 써 놓았고, 곳곳에 ‘우리 꽃 우리 이야기’ 안내판을 만들어서 함월산에 계절마다 피어나는 우리 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놓아 꽃과 자연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세심함까지, 마치 어진 임금이 나라와 백성을 알뜰히 돌보는 어심(御心)처럼 세세히 설명해 놓았다. 수렛재를 지나면서부터 숲길은 오솔길처럼 좁아진다. 좁다란 숲길 양옆에는 여러 신하들이 임금의 행찻길에 도열한 것처럼 소나무, 서어나무, 쪽동백나무, 느릅나무, 오리나무, 병꽃나무 등 크고작은 나무들이 활짝 녹음(綠陰)을 펼쳐 우리들의 행차를 환영해 주고 있었다.

묵은 낙엽,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 야생화, 바람소리와 새소리, 햇살과 그늘 등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숲, 탐방객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가져간 도시락을 먹은 뒤, 숲속에서 명상힐링 시간을 가졌다. 아픔을 덜어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그 아픔마저 품어주고, 마음 한켠에 새와 바람, 짙푸른 녹음과 꽃향기를 머물게 해서 똬리 튼 마음의 빗장을 풀어 확 트인 자연과 내 속에 가둬놓은 마음을 소통케 하는 것이 바로 숲속 명상힐링의 본체일 것이다. 이곳에선 임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나무, 풀, 꽃, 사람, 바람 소리 모두가 숲을 이루되, 그 숲이 곧 임금이며 세상의 주인이다. 숲을 이루는 모두가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인지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힐링이요, 그 힐링이 왕의 길을 걸어가는 탐방객 모두가 스스로 얻는 축복일 것이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요, 위·아래 차별이 없는 세상, 그래서 모든 존재가 함께 주인공이고 왕으로서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모두가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힐링이 아니겠는가.

 
▲ 마사토가 융단처럼 깔린 왕의 길 탐방로.


◇전설이 살아나 행복을 건네는 길

‘신문왕 호국 행차길’에서 가장 절경인 곳은 용연폭포였다. 신문왕이 만파식적 대나무와 옥대를 동해바다 해룡으로부터 얻어서 환궁할 때, 마중 나온 어린 태자가 옥대의 용 장식 하나를 떼어 시냇물에 담그니 진짜 용으로 변해 승천하고 시냇가는 깊이 패여 연못이 생겼는데 그 연못을 용연(龍淵)이라 불렀고 그때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띤 폭포가 생겼는데 이를 용연폭포라 불렀다고 하는 전설이 폭포수 아래 고인 깊은 소(沼)에 긴 실타래처럼 서려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전설은 그 당시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미륵의 역할을 하면서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극복할 수 있는 길을 현실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를 통해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기가 막힌 발상이다. 현실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도 되고 불행도 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왕이 어디 있겠냐마는 내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자 모두가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골굴사 바위굴 속 부처님의 아득한 미소처럼 자비로운 세상이 되고, 선무도의 정적인 품새에서 나오는 당당한 서기(瑞氣)를 품고 일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박종현(시인, 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숲 속에서 명상 힐링하는 회원들의 모습.
골굴사 스님의 선무도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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