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87)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87)
  • 경남일보
  • 승인 2016.07.0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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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경남문단에 최근 발표된 소설과 수필들(19)
‘거제도 섬길 따라 이야기’의 여섯번째 서한숙의 <사람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을 차례다. 이 이야기는 부제로 붙인 ‘거제도 애광원 김임순 원장’에 관한 생애를 열어 보인다. 김원장은 인생에서 세 번의 뒤틀림 끝에 거제에서 불우한 어린이들을 거두어 키우는 사람으로 거룩한 생애를 창조한 사람이다. 수필가 서한숙은 이를 취재하여 그 숭고하고 아름다운, 본받기 힘드는 삶을 조명하고 있다. 김임순 원장은 어린 시절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작은 집 양녀로 들어가 자랐고, 결혼을 했는데 6.25 공간에서 남편을 잃었고, 거제로 피난대열에 끼여 들어온 시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아들 하나를 데리고 거제로 왔다가 우연히 대학의 은사를 만나 전쟁 영아 7명을 안아 키우게 되는, 인생의 운명적 굴절을 겪었다. 우리는 김원장의 이 굴절의 인생을 보면서 그 굴절 속에서도 순리로 생을 완수해가는, 그러면서도 사회 공동체 안에서의 거룩한 사랑을 이룩해 가는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럴 때 거룩하다거나 숭고하다거나 하여 그들에게 종종 위로와 찬사를 드린다. 그러나 그런 겉치레로 이들의 삶을 요약하거나 찬사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뜻이 서 수필가의 조명의 의미일 것이다.

김원장의 남편에 관한 대목을 보자. “결혼한지 두 달만에 그녀는 남편과 예기치 않은이별을 맞았다. 아버지의 회갑연에 부부가 나란히 왔다가 입덧이 심한 그녀는 친정에 남고 남편(영어교사)은 먼저 서울로 떠난 것이다. 그 길로 6,25전쟁이 터져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그녀는 부부의 연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그 이듬해 상주에서 남편을 빼닮은 딸을 낳았지만 이를 알릴 방법은 없었다.”

이후 뒤늦게 시어머니가 거제도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친정을 떠나 1951년 8월 중순에 부산으로 갔다가 배를 타고 거제에 이른 것이다. 그녀는 포로수용소가 있는 거제에서 시어머니와 어린 딸과 함께 단칸 방 살이를 시작했다. 그 어느 무렵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중 우연히 대학시절의 은사를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로 그녀를 데리고 갈 데가 있다고 하면서 장승포 산비탈 허름한 움막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때의 상황을 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움막으로 들어가니 가마니때기에 누운 일곱명의 갓난 아기들이 허기진 채 정신없이 울고 있었다. 머리맡에는 낡은 주전자, 미군 우유깡통, 찌그러진 냄비 하나가 고작이었다. 온기를 찾아볼 수조차 없는 싸늘한 냉방이었다. 더욱이 미군 모포에 싸인 갓난 아기 세 명은 아직 탯줄도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비참한 지경에 놓인 전쟁 영아들을 그녀에게 맡아 달라는 게 아닌가. 몇 시간만 맡아 달라는것도 아니었다. 이는 전쟁 통에서 살아 남은 자가 마땅히 감당하야 할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그녀를 홀로 남겨둔 채 그는 총총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이 상황에서 김원장은 냉기로 가득찬 움막에서 전쟁 영아들을 돌보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움막 속에 버려진 비참한 아기들을 부둥켜 안고 울면서 온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다는 기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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