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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7월1일(2면) 남강댐 수몰지구 특집
김지원 기자  |  goodnews@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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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07  21: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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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7월1일(2면) 남강댐 수몰지구 특집. 경남일보 그 때 그 시절, 그때 그시절


1967년 7월1일(2면) 남강댐 수몰지구 특집

7월 첫 주말동안 장맛비가 한참 퍼부었습니다. 바닥이 드러나던 남강에 모처럼 강물이 출렁입니다. 남강은 상류에 인공호수 진양호를 막은 낙동강수계 최초의 다목적 댐 남강댐이 있습니다. 진주시 판문동과 내동면 삼계리를 막은 남강댐은 1920년대에 시작된 사업으로 1936년 1차 착공을 시작했지만 1943년 세계2차대전으로 굴착작업 중인 상태에서 중단돼 1949년 2차 착공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다시 중단된 사업은 1962년 3차 착공돼 1969년 10월7일 마침내 준공됐습니다. 남강댐은 2001년에는 보강공사가 이뤄졌지요. 
남강댐은 연간 43Gwh의 발전시설과 진주와 사천방향의 수문이 있어 홍수때 수위조절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사천방향의 방류로 인한 어민들의 피해문제가 이따금 분쟁을 일으키고 있지요. 
1967년 당시 경남일보 지면에는 완공을 앞둔 남강댐과 관련해서 수몰지구에 해당되는 주민들의 보상문제는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다룬 기사들이 눈에 띕니다. 7월1일자 토요일 2면에서는 전체 지면을 통해 해당기사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1970년 경상남도 ‘도정백서’에 의하면 토지 5767평과 건축물 1308호 6193동에 대해 보상을 집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진주시 내동면, 대평면, 수곡면, 평거동, 판문동 등이 수몰지구에 포함되었습니다. 대평면의 경우 전체 면적의 25%가 수몰되어 가장 많은 지역이 수몰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인근의 오미, 대평이주단지 등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2001년 보강공사 준공으로 대평면은 사실상 전체지역이 수몰되었습니다.

1967년 7월1일자 지면은 ‘남강땜 수몰지구의 보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라는 2줄짜리 헤드라인을 통해 남강댐 수몰지구 보상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낙동강유역주민의 숙원사업에는 본공사 못지 않은 보상대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톱기사에서는 인공저수지 속으로 매몰되는 수몰지구의 이주문제와 보상금 중 42%가 연내에 지급되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왼쪽 상단의 4단짜리 기사는 수몰되는 지역의 토지 3584정보와 가옥 3800여동 수몰에 대한 보상금만 19억6000여만원 책정되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고 그 아래 3단짜리 기사에서는 집단이주지에서 개전공사를 시행할 계획에 있다는 내용과 일부 이주민은 고향 가까운 진주로 옮긴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아래로 이어지는 3단 기사에서는 보상금 액수와 지불계획을 다루고 있어 수몰 31미터 선은 6월까지, 32미터 선은 7월까지 지불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른쪽 하단 박스에는 남강댐 수몰지구 대책사무소 담당 공무원들의 이름이 안내되었습니다. 가장 아랫단 3단기사에서는 홍수기를 앞두고 있는 점을 언급하면서 연내전액보상을 위해서 추경예산에 책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사 말미에는 제3자가 보상금을 지불청탁을 해와 대책사무소를 괴롭히고 있다는 내용도 눈에 띕니다.
전체 5건의 기사와 3장의 사진을 써서 꾸민 특집지면으로 당시 사업의 규모와 중요성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가로활자로 바뀐 요즘에 보는 세로판 특집지면이 이색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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