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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의 발길 닿는대로 (83) 용추계곡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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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4  01: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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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추폭포


장마가 소강상태라더니 찔끔거리던 간밤의 비도 그치고 아침햇살이 폭염이라도 쏟아부을 듯이 심상치가 않다. 밥상머리에서 피서지 운운했다가는 ‘조선과 해운업계의 불황으로 나라경제도 어려운데 설상가상으로 영국의 브렉시트 여파까지 덮쳐서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부엌살림은 뒤집어질 판이라 사니 못 사니 하는 판국에’ 하고 시국강연이 시작될 것 같아서 입을 꼭 다물었는데도 자꾸만 폭포가 있는 계곡이 생각나서 연암 박지원 선생의 물레방아공원이 있는 용추계곡을 찾아 집을 나섰다.

35번 고속도로 지곡요금소를 나와 안의로 들어서면서 얼핏 들은 소리가 생각나서 남강 쪽으로 차를 몰아서 ‘율림’을 찾았다. ‘밤숲’이라 해서 ‘율림’이랬다는데 밤나무는 몇 그루가 안 되고 온통 아름을 넘는 굵기의 낙락장송들이 빼곡한 노송의 숲이다. 짙은 빛깔의 청기와를 얹은 삼오정 정자가 시원스럽게 자리를 내주는데 삼오정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란다. ‘병오 팔월 박정희’라고 주서가 붙었으니 1966년도인가 본데 옛 세월이 됐다.

다시 강을 끼고 돌아서 안의로 들어서자 금호천 강가에 꽤나 널따랗게 자리 잡고 날아갈 듯이 추녀를 활짝 펼쳐 웅장하면서도 날렵한 광풍루가 굽어본다. 태종 12년 1412년에 세워서 ‘선화루’라 했다가 안의현감이던 일두 정여창 선생께서 중수해 ‘광풍루’라고 고쳐 불렸다 한다. 일두께서 점필재의 성리학을 이어받은 문하생이라서일까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옛이야기가 서려 있는 함양읍의 학사루와 빼어나게 닮았다.

광풍루를 뒤로하고 다리를 건너 거창방향으로 좌회전을 했더니 이내 용추계곡으로 들어서라고 안내판이 일러준다. 안심마을로 접어들자 물레방아의 시원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여럿인데 솔숲에는 연암 박지원 선생이 안의현감으로 재직하며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물레방아를 설치한 곳이라고 선생의 ‘열하일기’에서 밝혀진 내용이라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당시의 물레방아확이 발견된 곳으로 작은 공원이 꾸며져 있다.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잠시 오르면 관관안내소가 딸린 커다란 문루 같은 기와집을 출입문으로 삼고 왕복 2차선의 길이 열렸는데, 안으로는 널따란 주차장을 마련했다. 소나무 뿌리와 돌부리가 계곡으로 길을 내어주는 숲길로 들어서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건물의 심원정은 옛 내음을 물씬 풍기며 암반위에 앉았는데 깔고 앉은 반석이 끝난 곳을 알 수 없게 크기가 엄청나서 어디가 거북의 머리이고 꼬리인가는 분간이 안 된다. 심원정의 2층 누마루로 오르면 천장 들보를 걸터타고 청룡은 여의주를, 황룡은 물고기를 물었건만 깊은 뜻은 알 길이 없는데 재궁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은 청심담으로 파고들며 물보라를 일으키고 바람에 흩날리는 물안개는 건너편 벼랑을 이루며 농짝같이 쌓아놓은 층층의 바위인 농암을 휘감으며 ‘정돈암 장수지소’ 라고 음각돼 선생의 유훈을 되새기게 하는 절경을 펼쳐준다.

정자에 올라 주변경관에 심취되면 시인묵객이 따로 없다. 노송의 가지 끝에 벽공이 창을 내고 청심담 맑은 물은 명경지수 이루었고 농암의 기암절벽 물안개가 자욱한데 돌거북의 등에 오른 심원정에 앉았으니 물소리 청량하여 가야금도 할 일 없고 청심담에 시를 쓰고 농암 끝에 난을 치면 지필묵은 소용없고 차 한 잔이 제격이다. 옛사람들도 농월정의 화림동, 수승대의 원학동, 심원정의 심진동을 안의 삼동의 삼가승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거제부사 돈암 정지영 선생의 유덕을 기리며 선생을 찬양하고자 선조 7년에 제자들이 건립한 심원정은 찾는 이들의 몰지각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 돈암 선생의 후손 정종두 종손은 유지관리에 하루해가 짧다하니 선현들은 이름을 남기는데 세인들은 쓰레기만 남기는지 탄식이 절로 난다.

심원정을 나서면 이내 ‘연암 물레방아공원’이 쉬어가라 붙잡는다.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를 뒤로하고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삼형제바위가 참으로 기이하니 기어이 보고 가라고 볼품없는 안내판이 정중하게 붙잡는다. 계곡으로 내려서자 크고 작은 바위들이 계곡 바닥에 빼곡하게 깔려서 물소리는 더욱 요란한데 이게 웬 조화인가! 정육면체의 거대한 바위 세 개가 가운데 하나를 중심으로 계곡 이쪽저쪽으로 같은 거리를 두고 다리의 교각이라도 놓은 듯이 웅장하게 앉았다. 상판만 얹으면 굉장한 크기의 석교가 됨직한데 엄마의 무덤을 찾아 막내를 업어 건너 놓고 둘째를 업으러고 가운데 쯤 왔을 때에 삼형제의 우애를 시기한 마귀할멈이 돌로 굳게 했다니 전설속이나마 참으로 몹쓸 할미다. 형제들의 효성과 우애에 감탄해 마귀할미가 다리를 놓아주려 했더라면 좋았으련만 뒷맛은 씁쓸하다.

풍수지리학의 종조이신 무학대사가 정도전에 밀려서 은신처를 찾던 중에 이곳 명당의 자리에서 찾았다는 매바위는 계곡 건너 숲속에서 머리를 곧추세우고 줄줄이 이어지는 매산나 소와 요강소의 소용돌이치는 물보라를 응시하며 짙은 숲에 몸을 숨겼다. 사평교를 건너자 집채만 한 꺽지가 살았다는 꺽지소의 물소리는 더욱 요란한데 이어지는 용소는 목이 잘린 옛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여인과 수도승의 이루지 못할 애절한 사랑의 뒤끝이 바윗돌로 변한 상사폭포 옆으로 승탑부도는 세속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함인지 길섶의 비탈에 줄지어 앉아 물소만 듣는다. 성불과 득도를 기원하며 합장의 예를 올리고 차를 몰았더니 이내 널따란 주차장이 반긴다.

주차장 위로 층을 이룬 석축의 돌계단은 화려한 일주문으로 인도하는데 팔작지붕의 정교한 다포는 화려한 단청과 어우러져 감탄이 절로 난다. 신이 만든 전설속의 작품이라면 믿어 줄까, 아니면 3D로 출력했다면 믿어 줄까, 글로 써도 티가 되고 말로 해도 험만 되니 ‘덕유산장수사조계문’은 보기만 해야겠다. 일주문의 풍모에 홀린 뜻한 기분으로 용추교를 건너서 비탈길을 올라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굉음의 폭포소리가 차문을 밀치고 쳐들어온다. 용추폭포이다. 힘차고 세차건만 어쩌다가 승천하다 추락했단 말인가. ‘이제는 부디 승천을 하옵소서!’ 하고 합장의 기원을 올리는데 머리 위의 천년고찰 용추사가 지켜본다.



심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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