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 <148>함양 깃대봉(구시봉)
명산플러스 <148>함양 깃대봉(구시봉)
  • 최창민
  • 승인 2016.07.13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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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길서 만난 무인카메라에 얼굴 한장 찍고 간다
▲ 중나리


구시봉과 깃대봉을 혼용해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리하면, 구시는 소나 돼지 등 가축의 먹이를 담는 그릇을 말하는데 예부터 이 산의 지형이 구시를 닮아 구시봉이라고 불렀다. 이후에는 깃대봉이라고 했는데 옛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에 위치함에 따라, 당시 산 아래 주둔하고 있던 양측 군사들이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여 승전 때마다 정상에 깃대(깃발)을 꽂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2006년 1월부터 옛 지명을 되찾아 현재 구시봉(해발 1014m)으로 부르고 있다.

통영∼대전고속도로상 가장 긴 터널인 함양 육십령터널 상부지점에 해당한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변했으나 오래 전에는 함양의 심마니들이 산삼을 캤던 심심산골이었다. 요즘 그 전통을 이어 함양군이 전국 최대 산양산삼 재배지로 가꿔놓았다. 이 봉우리의 동쪽 발원 샘은 주상천을 통해 낙동강으로, 서쪽 물길은 장계천을 통해 금강으로 흐른다.

서상면 추상마을에서 임도를 타고 함양 산양산삼재배지까지 오른 뒤 등산로 초입인 숲길을 따르면 큰 산길을 만나는데 이 길이 백두대간이다. 오른쪽은 육십령과 남덕유산 방향이며 왼쪽이 구시봉, 민령, 덕운봉, 영취산 구간이다.

숲이 깊고 울창한데다 길까지 아름다워 왜 백두대간인가라고 묻는 이에 답을 준다. 구시봉 아래 깃대봉 샘터는 한여름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콸∼콸’ 쏟아내 지친 산객의 목마름을 풀어준다. 이날 산행에선 짙은 안개와 햇빛이 교차하며 숲을 장식해 꿈을 꾸거나 환상적인 장면을 보여줬다. 일면 혼자만의 산행이라면 서늘한 기운 때문에 소름이 돋을 일이었다.

 
▲ 신록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 길, 때로는 험난한 구간도 있지만 편안하고 아름다우며 싱그러움이 넘치는 길이 나오기도 한다. 


▲등산로, 함양 서상면 추상마을 회관→임도→대진고속도로 교각→임도→산양산삼농장→백두대간 능선(육십령~구시봉구간)→깃대봉 샘터→헬기장→구시봉 정상→민령→북바위→977봉→사거리→917봉→깊은골→옥산리 옥산마을→대진고속도로 굴다리통과→추상마을 회관.

▲추상마을에서 함양의 산양삼 재배단지까지 길고 긴 임도가 나있다. 그 끝에 고려산삼 발원지를 알리는 입간판과 산양삼재배 인력들의 휴식처로 보이는 산중가옥이 자리 잡고 있다.

오전 9시35분,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예보에 서두른 탓에 임도 끝 산중 가옥에서 길을 잃었다. 산 쪽으로는 철조망이 처져 있어 접근이 불가했고, 임도를 계속 따르자니 하산 길이었다.

등산로는 산중가옥에서 100여m 되돌아온 지점 ‘깃대봉 등산로’ 입간판을 찾아야 한다.

함양군은 2003년 해발 850m 지점 동북향 5㏊ 규모로 산양산삼농장을 조성했다. 삼국시대 때부터 구시봉에 영약인 산삼이 많이 자생해 중국 일본 등에 교역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 증거로 지금도 산에는 심마니 움막과 산신제단 터가 남아 있다고 했다. 군은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복을 보냈다는 지리산 심산유곡 서암동 서래봉 삼봉산이 산삼의 고장이며, 그 역사성을 토대로 옛 고려 산삼의 명성과 가치를 되찾아 미래 천년을 이어갈 건강농업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고 알리고 있다.

산에 들면 물이 지표면을 따라 얕게 흐르는 늪지대가 나온다. 작은 실개천도 건너야 하고 구릉도 지나야 한다.

5∼6m정도 되는 나무아래 고사리 이끼 등 양치식물을 비롯해 부드럽고 정갈한 풀들이 번성해 있다. 누구의 손길이 닿은 것도 아닌데 잘 가꾼 정원처럼 아름답다. 유년 시절, 또래 아이들끼리 소먹이 풀을 베기 위해 산중 이곳저곳을 헤맸던 기억이 스쳤다.

오전 10시14분, 대간길에 닿는다. 육십령에서 구시봉 구간 중간지점이다. 국립공원측이 갈림길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놓았다. 렌즈에 얼굴을 들이밀었더니 빨간불이 들어왔다. 센서가 움직임을 포착해 촬영되는 방식인 듯 했다. 삵 담비 너구리 오소리 등 동물의 움직임, 생태를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가장 많이 찍힐 듯했다.

길은 맨발로 걸어가도 될 정도로 더욱 넓어지고 부드럽고 선명하다. 깃대봉 샘터까지 완만한 오름길은 계속된다.

 
▲ 깃대봉 샘터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에서 자연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또 한 모금의 약수에서 산이 여유로운 벗임을 인식해야 한다’

‘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명의의 간판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오름길이 끝나고 이번엔 편안한 산행이 가능한 산상 고원 등산로가 나온다.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었다. 그야말로 야생의 산상화원이라 해도 좋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진한 꽃향기가 실려 왔다.

오전 11시, 구시봉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석엔 장수 장계면과 함양군 서상면의 경계표시와 함께 위도와 경도까지 상세히 안내해 놓았다. 구시봉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향수 때문인지 스텐리스로 만든 현대식 깃대를 세워놓았다.

 
 


지나온 뒤편 발 아래 육십령이, 눈위에 남덕유산 서봉이, 진행방향에 장안산 덕운봉 영취산 백운산 조망되는 위치이다. 짙은 안개 사이로 ‘후두둑’ 떨어지는 소나기가 이런 조망을 방해했다.

구시봉을 떠나 덕운봉을 잇는 능선 구간에는 억새와 산죽지대가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시절이 일러 억새는 부끄러운 듯 아직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낮 12시30분, 점심을 겸한 휴식 뒤에 장수군 장계면과 함양군 서상면 사이에 있는 민령(岷嶺)을 지난다. ‘밋밋한 고개’라는 뜻인데, 한자 ‘산 이름 민(岷)’을 빌려와 표기했다.

1943년 민령 부근에서 5㎞ 길이의 대삼선(대전∼삼천포)터널을 착공했으나 이듬해에 중단됐다. 이후 2009년 대전∼진주고속도로 완공과 함께 육십령터널이 뚫렸다.

 
▲ 야생화
 
 


재미있는 일화 하나. 당시 한국도로공사측이 육십령터널을 시공할 때 이 부근에서 뜻밖의 사갱(폐터널)을 발견했다. 이는 일제가 대삼선 공사를 하면서 예비로 산에서 비스듬하게 터널을 뚫은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육십령터널공사를 할 때 처음으로 이 터널이 발견됐다. 도로공사측은 사갱을 용도폐기하지 않고 환기구로 활용해 공사비를 절감했다고 한다.

오후 1시20분, 우뚝하게 선 북바위를 만난다. 믿거나 말거나 신라군이 승전표시로 정상에 깃발을 꽂은 뒤 이 바위에도 올라서서 북을 울렸단다.

덕운봉까지는 3.7km에 한 시간이 더 걸린다. 오후 2시20분, 덕운봉 못 미쳐 안부 갈림길에서 백두대간 길과 헤어지고 왼쪽으로 내려서면 숨겨진 계곡, 부전계곡을 따르게 된다. 송림을 지나 왼쪽 들녘 한 가운데 만행문이라는 편액을 단 부계정사가 나오면 구시봉 산행이 끝난다. 조선후기 성리학자 전병순(1816∼1890)이 은거하며 강학(講學)하던 곳이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구시봉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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