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88)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88)
  • 경남일보
  • 승인 2016.07.1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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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경남문단에 최근 발표된 소설과 수필들(20)
지금 이야기는 서한숙의 <사람꽃이 피었습니다-거제도 애광원 김임순 원장>의 계속이다. 운명이란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김임순 원장도 27살 때부터 남의 자식을 제 자식으로 품었다. 그날로부터 전쟁 고아들의 어머니가 된 그녀는 아이를 돌보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았다. ‘애광영아원’(1952)이 개원되자 전쟁중 버려진 아기들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아기 돌보기를 자원하는 어머니들도 여기 저기서 모여들었다.

이를 모태로 한 ‘거제도애광원’은 자연히 전쟁 고아들의 집으로 자리잡았다. 여기서 자란 690여 명의 아이들은 대학교수, 성직자, 교사,군 장교, 회사원 등 여러분야로 진출했다. 이 중심에는 그들의 가치를 최고로 인정한 전쟁 고아들의 어머니 김임순 원장이 있었다. 입양, 진학, 취직을 한 아이들이 떠나자 남은 아이들은 대부분 지적장애아였다. 이를 말해주듯 문 앞에는 자고 나면 버려진 지적장애아들로 골머리를 앓을 정도였다. 그들은 전쟁 고아들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단지 지적장애아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었다.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녀는 다시 지적장애아들의 어머니로 살아야 했다. 정상아들은 다른 사람이 키울 수 있겠지만 지적장애아들은 자신이 아니면 키울 수가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하여 애광원을 설립한지 25년만에 지적장애아들을 위한 집으로 바꾸었다. 여기에다 ‘거제애광학교’를 세워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그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했다. 또 중증 장애아들의 재활과 치료를 돕기 위해 ‘민들레집’도 개원했다. 여기 거주하는 100여명의 중증 장애아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가운데 민들레같이 강한 생명력을 이어간다.

그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한 숟갈도 떠먹을 수가 없다. 뛸 줄도 모르고 표현하지도 못한다. 이 속에서는 민들레처럼 낮은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민들레 씨앗들이 햇살 아래 누워 살랑살랑 바람을 탄다. 파도소릴 벗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스스로 낮아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살아갈수록 사람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고들 한다. 사람이 그리운가. 그렇다면 장승포 산비탈로 살짝 돌아서 가 보면 좋을 것이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쓴 서한숙은 애광원 김임순 원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그녀가 거제 사람으로 거듭난 지도 어언 64년 세월이다. 91살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소녀같이 앳된 얼굴이다. 소탈한 목소리와 함께 피어나는 환한 미소가 ‘사랑과 빛의 동산’ 구석구석을 밝히고 있다. 아흔이 지난 지금은 무릎의 연골이 닳을 대로 닳아 지팡이에 의존한다.”

거제는 풍광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거기에 애광원이 있어서 더 아름답다고 할 것이다. 거제 조선사업이 이런 정신에 힘입어 벌떡 일어나길 기대한다. 이는 결코 거제사람들만의 기대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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