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4)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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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4)

그가 아무리 유화적인 말을 해도 이미 암암히 내려진 마음의 빗장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짧지 않은 기간 남자로 기대보고 싶었던 적도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굿바이다.

‘내가 너와 결혼을 하겠다니 무슨 너의 여성적인 뇌살스러움이 탐나서 안달인 걸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나는 남녀 간의 음양의 이치도 부정 이전에 깡그리 도외시하는 너의 그 오만한 석녀증을 치유해 주고 싶은 거다. 가슴에 멍들어 있는 그 시커먼 독소를 내가, 이 박 현태의 넉넉한 남성으로 치유시켜 주려는 거다. 하하하…. 그래 부인은 않겠어. 일테면 너의 피해의식에 절은 가엾은 영혼의 구제라고 볼 수 있지. 구제, 구제, 그래 맞았어 구제야 구제’

취해서 흐트러진 자세로 오만하게 껄껄거리던 기득권자연 하던 그 농소(弄笑). 건방진 어깃장이었지만 남자의 매력은 바로 그런데 있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번 박힌 모멸감은 상기할 때마다 양지의 심리를 얼음 기둥으로 꼿꼿해 지게 만들었다. 평소의 그런 감정을 무릅쓰고 그의 부모에게 선까지 보였던 것은 심신이 어지간히 나약해졌던 탓이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이성적이지 못했던 자신의 경솔함이 후회스럽다.

“우리들 일은 더 진척시키지 말라고 했었지?”

안마당을 기웃거리며 집으로 들어가려는 현태를 막아섰다.

“천만에, 그 쬐끄만 꼬맹이 때문에 우리 일이 깨어지다니 말이나 돼? 양지가 집에 갔다는 말 듣고 곧바로 감지하고 왔으니까 시치미 뗄 것 없이 나하는 대로 잠자코 따라만 와. 정남이 일도 언제까지 숨기고만 있어도 안 되는 일이고, 또 우리 사이의 난점이 뭔지 말씀 드리고 협조를 구하면 일은 쉽게 풀리게 돼있어. 가족이 뭔데, 이럴 때 가족이지 언제 가족이야”

“가족이라는 말을 참 편리하게 이기적으로 해석하는 데, 내 입장은 그쪽하고 달라. 만약 현태 씨가 수 백 명의 고아를 한꺼번에 입양한다 해도 이제는 근본적으로 해석이 달라져”

두런거리는 바깥 기척을 듣고 어머니라도 나온다면 감당 못할 엉뚱한 방향으로 사태는 확산되리라. 양지는 현태를 이끌고 서둘러서 바깥마당을 벗어나 우선 소나무 숲이 짙은 동묏등으로 길을 잡았다..

바위가 웅숭깊게 감싸고있는 장소에 이르자 양지는 어머니가 편찮아서 지금은 아무것도 못할 상태라는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손에 든 담배 가치를 입에 대려다 말고 현태가 픽 웃었다.

“해도 너무하네. 그 따위 거짓말에 내가 속을 줄 알았어? 아주 그냥 시골 가난한 집 장남보다 사장님 아들한테로 이미 마음 결정했다고 선언을 하는 쪽이 훨씬 너다운 표현 아냐?”

“그래, 그렇겠지. 그게 그쪽의 사고방식이니까”

“내가 그렇게 인지하도록 만들고 있잖아. 말하는 것 들으니까 악성종양을 말하는 것 같은데 딸이 돼 가지고 그렇게 담담할 수가 있어? 나한테 들려주기 위한 대사라는 게 벌써 들통 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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