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89)
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389)
  • 경남일보
  • 승인 2016.07.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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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경남문단에 최근 발표된 소설과 수필들(21)
수필가 황광지의 수필집 ‘장마 사이’에는 재미 있는 수필 제목이 눈에 띈다. <장마 사이>, <두 남자>, <로라 떡방아간>, <폼생 폼사>, <떠나지 않는 방랑시인>, <네 살과 신랑> 등이 그것이다. 필자는 먼저 제호인 <장마 사이>를 읽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장마도 악조건이 아니라 배경음악처럼 분위기를 더했다. 유월의 막바지 신록이 물을 만나 오히려 푸름을 빛냈다. 전국에서 각양각색이면서 하나같이 진국이라 해도 괜찮을 여덟명이 춘천으로 영성수련을 곁들인 모임을 향해 움직였다. 여수의 J는 외강내유, 광주의 Y는 곧이곧대로, 구리의 S는 착한 카리스마, 안양의 B는 예쁜 골통, 포항의 G는 아직도 처녀, 인천의 L는 언제나 총각, 남양주의 H는 최고 훈남, 그리고 나는 마산의 이방인, 나를 제외한 모두는 왕년에 노동운동을 했고 지금도 그쪽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이다. 또 한때는 나를 비롯하여 모두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한 자활사업에 몸담았던 인연으로 OB모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번 모임은 H가 안내를 맡았다.

언제 보아도 감수성이 풍부한 H는 춘천으로 가기전 우리를 양평에 있는 세미원으로 데려갔다. 세미원은 물과 꽃이 가득한 정원인데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곳이라고 했다. 비가 왔지만 주룩 주룩 내리지 않고 내렸다 그쳤다 하는 장맛비라서 낭만에 젖기에 충분했다. 기분 좋게 내려앉는 빗방울 사이로 연꽃이 펼쳐진 넓은 정원을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상에서 떠나 풀꽃 이름을 서로 묻기도 하면서 안달하지 않는 시간을 즐기는 여유, 물기 있는 자잘한 자갈길을 느린 걸음으로 걷는 쉼, 강물이 에워싼 정원의 풍광을 만끽하고 나오니 입장권과 교환하여 차를 마실 수 있는 덤이 있었다. 백연잎차를 마시는 동안 눈으로 보았던 연을 맛으로 음미하며 세미원 구경을 매듭지었다.“

수필은 다시 두물머리로 가는 이야기를 한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두물머리가 바로 양수리라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강둑을 걸으면서 올 고운 비의 가닥이 강물의 정취를 북돋워 주어 새삼 고마웠다. 두 물이 합쳐져 한강으로 흐르는 물줄기에서 힘을 느끼며 전국에서 낱낱이 모여 인연을 쌓는 우리들의 힘도 생각했다. 양수리를 출발하여 얼마 지나자 오른 쪽으로 소설 <소나기>의 배경이 된 수능리 마을이 있음을 확인했다.”

일행은 이후 식당을 거쳐 종착지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 닿았다. “자연의 미물과도 대화를 나누었다는 프란치스꼬 성인을 닮고자 하는 수사님 네 분이 수도하며 피정의 집을 돌보고 있었다. 장맛비는 내렸다 그쳤다 반복하면서 산골의 정취를 한껏 끌어올렸다. 신부님은 처음부터 다음날 떠나올 때까지 웃음 띤 얼굴을 바꾸지 않았다. 빈민운동과 자활사업에 투신했던 신부님이었기에 더욱 프란치스코의 삶을 닮았다고 느껴졌다.”

작가는 끝에다 다음과 같이 썼다. “장마가 마산에서 춘천까지의 먼 길이라고 염려했던 여정은 기우였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장마 사이를 비집어 낭만을 채색하고 우정을 키우고 영성을 살찌운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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