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6)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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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6)

그녀는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따뜻함을 소유했다. 오래 안고 뒹굴었던 베개나 이불처럼 현태가 곁에 있었다. 취한 채로 그를 불렀고 같이 잠들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현태의 긴 팔이 그녀의 어깨에 감겼다. 그녀는 눈을 감고 온도 적절한 물속에 잠긴 것처럼 아늑함을 맛보았다. 누군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지켜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평안함을 선사할 줄이야.

“이제 좀 괜찮아?”

양지는 이마에 닿는 현태의 숨결을 한숨인지 흐느낌인 모를 호흡과 함께 들이키며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은 최면제 같았다. 나른한 피부에 접합되는 수압의 감미로운 상태가 이완된 몸과 마음의 갈피를 비집고 들었다. 그 편안하고 감미로움에 그녀는 자신을 맡겼다. 그 피로한 방기 상태는 감미로운 중력에 실려 어딘가 멀고 아득한 영원으로 그녀를 감싼 채 이동시키고 있었다. 아아, 이대로 자멸해버려도 여한이 없을 듯하다. 양지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어릴 때 꿈속에서 이부자리에다 시원하게 소변을 보았을 때 느꼈던 쾌감과 죄책감 같은 것이 낮게 되감겨 있어서 더욱 이중적인 포근한 자극에 휩싸였다. 양지는 자신의 몸속에도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육체적인 함정이 있는 줄 그제야 절실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때없이 드러나는 영혼의 질책은 호되었다.

‘육체가 가진 한순간의 유혹에 못 이겨 너를 이렇게 포기해도 되느냐. 고작 이런 결말을 위해서 너는 그토록 안달하며 학벌을 쌓고 견문을 넓혔던 거냐. 지금 이대로 너를 버리면 너는 박현태라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그 집의 며느리가 되어야하고 그의 형제들의 동서나 형수 또는 새언니가 되는 것으로 너를 바쳐야한다. 그저 평범하고 순탄한 여자로서의 길에 대한 네가 납득할만한 아무런 정의도 내리지 못한 채 어머니의 경우도 잊고 너를 포기하다니, 낫 놓고 기역자도 깨우치지 못한 무지렁이 여자들도 하는 그 하찮고 평범한 일들을 하면서 그들의 불행까지 닮아가서는 안 된다’

그 순간 무언가 발에 밀려 파열음을 냈다. 동시에 긴장하면서 끌어안는 현태의 힘이 느껴졌다. 현태의 팔에 감겨있는 육신은 자꾸 나른해지고 있다. 순간 번쩍 정신을 차렸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지금 누구랑 있으며 어떤 상황인가’

그런 인지를 하는 도중에도 그녀를 끌어안은 현태의 부드러운 입김이 오감을 자극하며 밀려들었다. 양지는 몸을 떨었다. 모든 여자들이 거치게 되어있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순간. 그 극한의 지점에 닿아있었다. 그악스럽게 움켜쥐고 있는 손을 놓아버리는 순간 맛보게 될 극치의 희열, 이 감정을 받아들이고 싶다. 아, 이대로 녹아들어버리고 싶다. 전율하는 육체와 이성의 대치 속에서 양지는 긴장된 몸의 결박을 푼 채 뇌살당하고 싶은 간절함으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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