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보다 젊은 삶, 컴퓨터로 얻었다”
지난 18일 오후 진주시니어정보센터 강의실. 총 서른 명, 예순 개의 눈이 재빠르게 움직인다.
마우스를 만지는 손은 더뎠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매서웠다. 프로젝터 화면에 포토샵 프로그램을 띄워놓은 강사는 차근차근 설명을 반복했다. “도구 모음에서 편집을 누르고…”
이곳저곳서 주름진 손이 여러 번 마우스를 딸깍이는 사이, 한 어르신은 가벼운 손놀림으로 키보드 키 몇 개를 동시에 눌렀다. 하얗게 비었던 화면에는 초록색 모형이 채워졌다. 서른 명 중 가장 빠른 속도였다.
“늘 하던 내용인데 무얼…. 나보다도 더 열의 있으신 분들도 많고, 매일 질문을 해도 상세히 알려주는 강사님들도 여럿 계셔요. 대단할 게 하나도 없어요.” 이날 공봉자(77) 할머니가 건넨 첫 마디였다.
컴퓨터를 배운다는 말에 주변에서는 대충 편하게, 건강이나 생각하며 살라고 했다. 누군가는 힘을 쓰자면 여행이나 즐기라고도 했다. 공봉자 할머니가 눈살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공봉자 할머니는 “‘어려운 걸 왜 하느냐, 앉아서 놀지’ 그래. 그 나이에 뭘 새로 배워서는 고생이냐고 한다”며 “늙어 시간이 빨라도 하루가 참 지겨울 때가 있는데, 컴퓨터를 이리저리 만지는 것 만큼 시간이 잘 가고 재미난 게 없다”고 말했다.
공봉자 할머니는 젊을 적 타자학원을 운영했었다. 은퇴 이후 나이가 들 동안 마땅히 배워놓은 취미가 없어 아쉬운 참이었다.
그러다 몇 해 전 교통사고를 겪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후유증은 두고두고 무리를 줬다. 공 할머니는 함께 교육을 수강하는 할머니의 말을 빌려와 컴퓨터를 익히기를 잘한 일이라 손꼽았다. ‘다친 뒤로 놀았으면 진작에 멍청해졌을 것을 컴퓨터를 배워 다행이다’는 말을 들었다고.
그녀는 “열중해서 타이핑도 하고 머리를 굴리니까 앓던 곳도 잊었다”며 “집에 영감님도 암을 앓아 10년 동안을 몸조리하셨는데 컴퓨터 배우러 나간다면 두 말 않고 보내지”라며 웃었다.
공 할머니는 문서 편집부터 포토샵, 영상 편집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반 나절씩 보내기 일쑤다. 지난달에는 서울서 열리는 ‘전국국민행복IT경진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시험 주제는 인터넷 주제 검색. 평생 볼 일 없던 인터넷 검색 관련 서적을 사들였다. 센터 내 최고령자인 93세 할아버지는 존재만으로도 공 할머니의 공부 욕심을 자극했다.
결국 대회 1부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대회는 1~3부로 나뉘어 있는데, 공 할머니가 속한 1부는 77세 이상 최고령자 중에서도 각 지역에서 선발된 시니어만 속한 곳이다.
공 할머니가 특기로 꼽는 분야는 단연 타이핑이다.
과거 타자학원을 운영했던 만큼 1분에 350타 가량으로 젊은이들 부럽지 않은 타자수를 자랑한다. 대회에서 주제를 두고 검색할 때도 타자 실력이 빛을 발했다. 게다가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스위시맥스 실력으로는 손주도 놀래켰다.
공 할머니는 “상을 탔다니까 아들이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해 가슴이 다 찡했다”며 “외손주는 내가 올린 영상을 볼 때마다 ‘할머니 이건 어떻게 배웠어요’, ‘할머니 이건 어떻게 한 거에요’라고 묻는데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모를 것”이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다른 ‘시니어’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떠밀어주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나이가 들며 외로움이 쌓이는 과정을 고스란히 겪었기 때문이다.
공봉자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몰라”라며 “컴퓨터를 기계로만 여기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친구 삼아 지겨움을 떨쳐내는 데 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배고픔도 간신히 알아차릴 정도의 재미를 나만 즐길 수는 없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또래들에게 ‘팁’도 전수했다.
“잠이 와서 오래 못한다 뿐이지 한 번 컴퓨터를 붙잡았다 하면 금방 밤 열시야. 친구들한테, 자녀들에게 이야기 건네는 법 하나도 어려울 것 없어요. ‘영상 만들었으니 보아라’ 하면 되는 걸!”
김귀현기자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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