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9)
  • 경남일보
  • 승인 2016.07.2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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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2 (199)

이게 아니다 싶을 때 사람은 선이건 악이건 최종적인 힘을 쏟는다. 억울한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양지는 잠자코 현태의 비수를 받았다. 내일은 어머니를 암센터에다 입원시키러 간다는 말을 하면 저 남자는 또 나서서 무엇이든 도와 줄 것이다.

그렇지만 동지의 배반을 확인하고 돌아서듯, 서운하게 굳은 얼굴로 발길 돌리는 현태를 그대로 가게 내버려두었다. 부산까지 출장을 온 김에 여기 어디라던데, 친정에 가있는 아내를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 들떠서 왔다며 농담까지 했었다. 배척은 그가 남자라는 것 때문일 뿐이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냥 뛰어가서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를 남자로 인식하는 순간 다시 가슴은 차게 굳어졌다.

저 좋은 사람과의 인연도 이게 마지막인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쓸쓸한 바람을 일으키며 그녀를 에워싸고 흘렀다. 생각지 못했던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굳은 마음 한 가운데서 아프게 솟아올랐다.

“현태씨, 잠깐만!”

양지가 부르며 달려가자 마음 변한 것으로 여긴 현태가 기대 찬 몸짓으로 마주 걸어왔다.

“여기까지 온 손님을 길 안내나 해야지. 우리는 참 좋은 친구였는데 미안해. 내 인생에 현태씨 같은 친구는 더 없을 거야”

“문디 가시나, 병 주고 약 주는 기가 뭐꼬”

현태 역시 아직 버리지 않은 미련이 남았던지 진주 식 어투로 만든 농담을 던지면서 같이 웃었다. 하지만 양지는 가슴이 아프다. 아무리 냉담해지려해도 사실상 결별을 선언해야 되는 이 상황이 안타까워 전신을 뜬다. 그러나 집안 형편상 지금은 자신이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안될 때인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들킬까봐 고개를 숙이는데 뚝뚝 떨어진 눈물이 어룽어룽 앞을 가린다.

‘현태씨.... .’

그녀는 기어코 길섶을 향해 쭈그리고 앉는다. 그러나 말은 한 마디도 입밖으로 내놓지 못한다.



13



큰길까지 현태를 바래주고 돌아오는데, 마을로 가는 좁은 길로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되돌아간 듯 착각되게 이상한 행렬이 들어가고 있었다. 옛날 사람들이 타고 다녔을 뿐 지금은 특정한 곳에서나 보게 되는 예쁘게 장식된 가마였다. 네 사람의 남자 가마꾼도 있고 여자 배행꾼도 갖추어져 있었지만 약간 장난스러운 것은 현대 식 가방을 든 여자들의 차림이었다. 이 지방에서는 내로라하던 최씨가였으니 윗대의 어느 할머니의 외출 모습이 저랬지 싶었다. 하님을 데리고 가마를 타고 나들이를 할 때 그 여자의 존귀함은 보는 이들 누구든 존중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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