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성이란 고읍을 지날 때는 벌써 누엿누엿한 동짓달 저녁 해가 옥같이 맑은 남강 상류에 불그레한 볕발을 디룬다’
1936년 일제강점기 궁핍한 농촌의 현실과 친일파 승려들의 잔혹함을 그린 소설 ‘사하촌’의 작가 김정한 선생의 시선에 70년 전 진주 남강과 단성의 모습이 이렇게 그려졌다.
요산 김정한(金廷漢·1908∼1996)선생이 광복기(1945∼1950)에 거창 산청 진주를 배경으로 쓴 단편소설 ‘길벗’이 새롭게 발굴됐다. 그는 ‘사하촌’의 작가로 한국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27일 이순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학술지 근대서지에 발표한 ‘혈탄으로서의 글쓰기와 문학적 실천’이라는 논문에서 “1948년 10월 부산에서 발행된 월간 중성(衆聲) 제7호에 요산 선생의 단편소설 ‘길벗’이 게재된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고 밝혔다.
‘길벗’은 원고지 70장 정도 분량의 소설 말미에 ‘1947년 7월 29일’을 표기해 작품을 쓴 날짜가 명기돼 있다.
소설은 양산 출신의 혁명가 전혁을 ‘전’ 그리고 김정한 자신을 말하는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1인칭 시점이다.
두 사람은 인천으로 압송되던 중 대구에서 탈출한 뒤 거창, 산청을 거쳐 진주로 향하는 여로를 그리고 있다.
‘그날 아침 첫 자동차로서 대구를 떠났다. 빨리 우리들의 본부에 알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리고 하로라도 바삐 돌아가야만 된다. 낯선 곳에서 더 어정어정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할 따름이다.’
‘그러나 차는 거창이란 곳까지밖에 가지 않았다. 좁은 산읍으로서 못 보던 손님이 하나만 내려도 표가 나는데 게다가 둘이나 또 꼴이나 꼴인가 말이다. 우리는 부리나케 진주로 가는 연락 뻐스의 시간부터 물었다.’
탈출 뒤 진주로 가는 여정을 숨가쁘게 표현한 대목이다.
그리고 ‘전’의 대담함에 이끌려 서장 앞에서 주린배를 채우고 술까지 마시는 선택을 한 후 경찰과 함께 트럭이 오른다.
단성에서 진주를 향할 때 ‘뉘엿뉘엿 동짓달 저녁 해가 옥같이 맑은 남강 상류에 불그레한 볕발(햇발)을 디룬다’고 했다.
‘별안간 도라꾸(트럭) 위에는 노래판이 벌어진다. 노래도 보통 노래가 아니고 바로 ‘붉은 기’의 노래 그것이 아닌가’
소설의 제목 ‘길벗’의 클라이 막스가 되는 부분으로 거창읍 경찰서에서 트럭에 동승한 경찰관 무리를 보고 발각될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 서장은 민선서장이라오. 친일 반동이 아니다”라며 ‘붉은 기’ 노래를 부르자 주인공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다.
소설은 이윽고 ‘그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곧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실은 도라꾸는 툭 터진 벌판을 가로질러 남으로 남으로 비호같이 내달렸다.’라고 마무리한다.
‘툭 터진 남쪽’은 희망의 도시 진주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얼핏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순욱 교수는 단성과 남강에 대한 감성적이고도 아름다운 표현 외에도 별도로 “이 시기 좌파 문학인들이 설 자리를 잃었던 때로 혁명가의 단순한 탈출과정을 그린 것이 아닌 동지를 발견하고 연대를 확인하는 여로를 그린 소설이다”고 설명했다.
최창민기자
1936년 일제강점기 궁핍한 농촌의 현실과 친일파 승려들의 잔혹함을 그린 소설 ‘사하촌’의 작가 김정한 선생의 시선에 70년 전 진주 남강과 단성의 모습이 이렇게 그려졌다.
요산 김정한(金廷漢·1908∼1996)선생이 광복기(1945∼1950)에 거창 산청 진주를 배경으로 쓴 단편소설 ‘길벗’이 새롭게 발굴됐다. 그는 ‘사하촌’의 작가로 한국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27일 이순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학술지 근대서지에 발표한 ‘혈탄으로서의 글쓰기와 문학적 실천’이라는 논문에서 “1948년 10월 부산에서 발행된 월간 중성(衆聲) 제7호에 요산 선생의 단편소설 ‘길벗’이 게재된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고 밝혔다.
‘길벗’은 원고지 70장 정도 분량의 소설 말미에 ‘1947년 7월 29일’을 표기해 작품을 쓴 날짜가 명기돼 있다.
소설은 양산 출신의 혁명가 전혁을 ‘전’ 그리고 김정한 자신을 말하는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1인칭 시점이다.
두 사람은 인천으로 압송되던 중 대구에서 탈출한 뒤 거창, 산청을 거쳐 진주로 향하는 여로를 그리고 있다.
‘그날 아침 첫 자동차로서 대구를 떠났다. 빨리 우리들의 본부에 알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리고 하로라도 바삐 돌아가야만 된다. 낯선 곳에서 더 어정어정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할 따름이다.’
‘그러나 차는 거창이란 곳까지밖에 가지 않았다. 좁은 산읍으로서 못 보던 손님이 하나만 내려도 표가 나는데 게다가 둘이나 또 꼴이나 꼴인가 말이다. 우리는 부리나케 진주로 가는 연락 뻐스의 시간부터 물었다.’
그리고 ‘전’의 대담함에 이끌려 서장 앞에서 주린배를 채우고 술까지 마시는 선택을 한 후 경찰과 함께 트럭이 오른다.
단성에서 진주를 향할 때 ‘뉘엿뉘엿 동짓달 저녁 해가 옥같이 맑은 남강 상류에 불그레한 볕발(햇발)을 디룬다’고 했다.
‘별안간 도라꾸(트럭) 위에는 노래판이 벌어진다. 노래도 보통 노래가 아니고 바로 ‘붉은 기’의 노래 그것이 아닌가’
소설의 제목 ‘길벗’의 클라이 막스가 되는 부분으로 거창읍 경찰서에서 트럭에 동승한 경찰관 무리를 보고 발각될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 서장은 민선서장이라오. 친일 반동이 아니다”라며 ‘붉은 기’ 노래를 부르자 주인공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다.
소설은 이윽고 ‘그는 유쾌하게 웃으면서 곧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를 실은 도라꾸는 툭 터진 벌판을 가로질러 남으로 남으로 비호같이 내달렸다.’라고 마무리한다.
‘툭 터진 남쪽’은 희망의 도시 진주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얼핏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라는 시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이순욱 교수는 단성과 남강에 대한 감성적이고도 아름다운 표현 외에도 별도로 “이 시기 좌파 문학인들이 설 자리를 잃었던 때로 혁명가의 단순한 탈출과정을 그린 것이 아닌 동지를 발견하고 연대를 확인하는 여로를 그린 소설이다”고 설명했다.
최창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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