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 <149>안동 왕모산
명산플러스 <149>안동 왕모산
  • 최창민
  • 승인 2016.07.27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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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겨울 '절정'을 이 여름 올랐다
▲ 신록이 아름다운 산길.
▲ 공민왕과 어머니가 거처했던 곳에 세워진 왕모당


1361년 초겨울 홍건적 난입으로 고려 공민왕은 어머니와 함께 개성을 떠나 몽진길에 든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싸우며 우여곡절 끝에 안동땅에 닿은 그는 어머니 명덕태후를 왕모산에 피신시킨 뒤 산성을 쌓고 권토중래를 꿈꾼다.


고려사에 왕의 몽진(蒙塵·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으로 피란을 말함)길이 묘사돼 있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가가 이천현에 닿았는데 비에 젖은 옷이 얼어붙자 장작불을 피워 한기를 막았다.’

왕모산(648m)은 안동 도산면 원천리와 예안면 삼계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왕의 어머니가 피신했다하여 왕모산이라고 부른다. 낮은 산이지만 10여개의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해야만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이 산에 왕의 흔적이 남아 있다. 초입 왕모당은 왕이 홍건적의 난 후 환도한 후 어머니가 피난했던 곳에 건립한 사당이다. 길이 140m의 왕모산성은 왕의 호위를 위해 당시 축조한 것이라고 전한다. 이 외 선녀가 내려왔다는 갈선대(칼선대)는 시인 이육사가 쓴 ‘절정’이라는 시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그러고 보니 인근 지역 봉화의 청량산도 공민왕의 피신처다. 그는 피란 후 1365년 최대 후원자였던 노국공주마저 난산 끝에 세상을 뜨자 크게 낙심한다. 집권 초기 하늘을 찌를듯한 개혁의 기치는 구름처럼 사라졌고, 기우는 국운을 한탄하며 자신의 퇴장을 조용히 예감했다. 청량산 옛길, 그 끝 응진전에 그토록 사랑했던 노국공주의 형상이 모셔져 있다.

정리하면 청량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 끝자락 단애를 이룬 지형이 왕모산으로, 이 일대가 그의 피난처였음을 알수 있다.


 

 


▲등산로, 안동 도산면 원천교→왕모산주차장(공사중)→왕모산성→왕모당→갈림길→갈선대→갈림길→왕모산 정상→소나무 있는 전망대→하산→한골→둘레길 데크(공사중)→갈림길 회귀→왕모당→왕모산주차장 회귀. 7km에 휴식 포함 6시간 소요.

▲오전 10시 33분, 안동 도산면 원천리 낙동강 원천교 위에 서 있었다. 산에 오르지 않고도 왕모산세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최근 내린 비로 불그스름한 황톳빛물을 안동호로 밀어내고 있었다. 발 아래 빠른 유속은 어지럼증을 나게했다. 멀리 강가에 유유자적 하고 있는 낚시객이 보였다. 무슨 물고기를, 얼마나 잡았을까. 비온 뒤 며칠은 물고기가 보이지 않는 법인데 아직 물고기가 있긴 할까. 왜인지 가슴이 벌렁거렸다. 푸른 하늘 아래 가야할 왕모산이 드러났다.

오전 10시 45분, 공사 중인 왕모산 주차장 띄약볕을 피해 산길에 접어들었다. 키가 훌쭉한 솔숲 오솔길 사이로 더운 기운과 시원한 바람이 뒤섞여 불어왔다. 갑자기 오름길이 드세진다. 숲은 깊지 않았다. 둥치가 작은 토종소나무밭에 대형소나무가 듬성듬성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오전 11시, 첫번째 봉우리에 올라선다. 웅장하지 않은 그런 저런 석비레를 지나 등성이를 넘어가면 왕모당이다. 주변에는 이 일대를 신성시하기위해 새끼줄이 처져 있고 3.3㎡(1평)남짓한 작은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안에는 사람형상의 목각과 벽화 화상 제기가 가진런히 놓여 있어 사람들이 관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이육사의 ‘절정’이라는 시의 모티브가 된 갈선대에서 내려다본 전경, 단사마을 앞으로 기름진 농토와 낙동강, 오른쪽에 왕모산이 우뚝선 아름다운 풍광이다.


8·15 해방직전 사당주변에서 나라의 경사를 알리는 신기한 징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산불이 나도 이곳은 화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원천리 주민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에 안녕과 복됨을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내고 있다.

첫번째 안부갈림길은 천곡지를 통해 우회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다시 오름길에서 마주친 안내판엔 ‘등산로가 아니니 올라가지 마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실제 이곳은 천길 낭떠러지로 돼 있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일부 등산객이 억지로 찾아가는 경우가 더러 있는 모양이다. 정상적인 길을 따르면 온전한 풍경을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는 갈선대가 있어 굳이 숲을 헤쳐서 갈 이유는 없다.

갈선대는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데 올라서면 굽이치는 낙동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강의 유려한 곡선 뿐만아니라 오른쪽에 왕모산, 왼쪽에 가옥들, 그옆에 너른 들이 펼쳐져 있다.

 
 



시인 이육사가 1940년 ‘절정’이라는 시를 쓸 때 이곳에 올랐다고 한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1940년 문장에 발표됐다. 일제강점기 수난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저항을 보여주는 저항시의 백미다. 그는 이 시를 발표하기 1년 전 청포도를, 3년 후에 광야를 썼다. 그리고 4년 후 이국 땅 베이징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낮 12시 30분, 바람이 불어오는 큰 소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도 낙동강은 휘돌아간다.

태고적 흘렀던 강물은 산을 깎고 또 깎아 물길을 확장시켜 놓았다. 그 물은 가장자리로 점점 밀려나서 흐르고…, 애초 강터엔 민가가 들어섰으며 앞뜰은 농지로 발달했다. 원천마을 일대에서 가장 넓은 천곡 들판, 강이 만든 천혜의 아름다운 삶터가 눈앞에 펼쳐진다. 옛날 이 강으로 회귀했던 은어는 왕의 식탁에 올랐다.

월란정사 천곡지 삼계출장소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오름길 끝에 헬기장이 있는 정상에 선다. 오후 2시,

왕모산과 인근 청량산은 공민왕의 산이다. 앞서 언급한 왕모당과 산성외에도 청량사 ‘유리보전’편액도 왕의 글씨, 맞은편 축융봉 청량산성도 그의 흔적이다. 안동시청 별관에 걸린 ‘安東雄府(안동웅부)’도 왕의 친필로 안동의 웅혼함을 표현한 것이다.

정상에서 벗어나 소나무가 있는 벤치 쉼터에서 내려다보는 낙동강은 알파벳 W자와 같다.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는 모습과 오른쪽으로 단천, 원천들, 왼쪽으로 천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 도산면 원천리 단사마을이 있는데 안동 하회마을처럼 강물이 돌아간다. 마을은 풍요로움을 대변하듯 조용하고 아늑하다. 단사마을 넘어 이육사 문학관, 퇴계종택, 도산서원 등 명소가 위치하고 있다.

정상에서 30여분정도 내려서면 3시께 한골입구 갈림길에 닿는다. 한골로 내려서지 않고 곧바로 직진하면 단천교를 통해 왕모산주차장으로 회귀할 수 있는 우회길이다. 원점회귀를 위해 한골로 방향을 틀면 이때부터 등산로 전 구간이 데크 공사중이다

오후 3시 10분, 한골은 이름처럼 찬바람이 일고 물이 차갑다. 등산화를 벗어던지고 지친 발을 담그니 더위가 단숨에 사라졌다. 오후 4시, 왕모주차장까지는 데크 공사중이어서 편안한 산행이 가능하지만 흙길을 밟는 것보다는 운치는 덜한 것이 아쉬움이다. 다시 갈선대를 거쳐 2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서면 왕모산 주차장이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낙동 강물길이 알파벳 W자로 흐른다.


tip 공민왕 몽진길

1361년 초겨울 개성 도성 출발→ 분수원(경기 파주)→영서역(양주)→사평원(경기 광주)→경안역(경기 광주)→이천현→음죽현(장호원)→충주(11월 을해일)→경상도 용궁→복주(안동)(12월 임진일).


하늘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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