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2)
  • 경남일보
  • 승인 2016.07.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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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2)

“언니가 자식 노릇 잘하고 싶듯이, 나 역시 우리 부모의 자식인데 내가 모르는 옛날 일에 대해서 그만한 이의도 표명하지 말란 말이야? 이건 어디까지나 옛날 일이고 추측도 가설도 무성하게 작용한 일이야. 언니 형편이 좋아지고 세상이 또한 좋아져서 언니가 목청을 높이지만 모르는 대로 그냥 덮여갔을 수도 있잖아. 더구나 우리 엄마 아버지가 직접 꾸며 낸 일도 아닌데. 언니 네가 괜히 죄인 취급하는 건 나도 기분 나빠서 못 참겠어.”

“엉큼하게 숨겨서 그렇지 너거 아버지가 와 몰랐노. 너것들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을 끼고”

“그래 솔직히, 아버지가 와 그리 유난시리 언니네 식구들을 경계하나 그런 의구심은 있었지. 언니 같으면 쉬쉬해야 될 일을 아이들까지 알려서 비밀의 구멍을 더 크게 뚫겠어? 난 그래. 언니가 그런 새삼스러운 일들을 파내서 찍자 붙어본들 달라질 건 별로 없어. 지금 세상이 어느 시댄데 그래. 그리고 난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도 않을 뿐더러 동요되지도 않을 거야”

“너야말로 뭘 믿고 사과도 없이 그 따구 어깃장을 놓는 건지 모르겠다. 니가 뭐라꼬 씨부리든 말든 나는 내 각본대로 하고 말꺼다.”

화가 나니까 꽤 세련된 척 서울토박이보다 더 서울스럽게 구사하던 억양도 어느 결엔가 고향식 사투리로 변해서 툭툭 틔어 나온다. 명자가 화를 삭이지 못하고 발발 뜨는 반면 양지는 오히려 대치상태로 벌떡거리던 심장이 차분히 가라앉은 정돈 된 음성으로 말을 받아나갈 수 있었다.

“그래, 새파랗게 날을 세운 칼은 하다못해 저 나뭇잎 떨어진 가지 하나를 쳐도 한 번 휘둘러야 직성이 풀리겠지. 어떻게 하면 우리 아버지 가슴 한복판에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도 가르쳐 줄께. 어려운 것도 아니야. 언니랑 어깨동무하면서 같이 자란 성남언니를 꺼내. 우리 언니가 얼마나 효성스럽고 관대했고 또 집안의 장래에 대해 그 또래답지 않게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만약 그 애가 살아 있었다면 명자, 나보다 더 성공을 해서 아버지의 노후도 걱정 없을 텐데’ 한 마디만 해줘. 우리 아버지 그 독선적인 외고집통도 자신이 얼마나 편협했으며 세상의 흐름을 거꾸로 읽고 살았던 지 어리석음을 깨닫는다면 아마 명자언니 앞에서 피를 토하고 말 거야”

양지는 말라드는 입술을 축이려고 번 갈아서 아래 윗입술을 빨았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는 지에 대한 느낌도 없었다. 각본대로 한다던 명자의 말을 그녀 자신이 먼저 실행하여 대사를 외우는 것처럼 마음에 없던 대꾸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속에 있는 말을 다하기는 했다. 그런 순간 전신을 지탱하고 있던 힘이 쭉 빠져버린 듯 무력감이 엄습했다.

괜한 자격지심의 발로였을까. 왜 그렇게 여러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누구보다 명자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명자는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싶은지 펄펄 뛰던 좀 전의 기색이 많이 누그러진 기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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