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5)
  • 경남일보
  • 승인 2016.07.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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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3 (205)

울화로 눈이 뒤집힌 아버지는 먼저 손에 닿는 마당 빗자루를 집어 들자마자 닥치는 대로 아이들을 향해 휘둘러 치기 시작했다. 발이 빠른 언니들은 모두 도망을 가고 아버지에게 밟힌 발등을 주무르고 있던 양지에게로 무차별한 난타는 쏟아져 내렸다. 날개가 짓이겨진 어린 잠자리 마냥 양지는 아버지의 뭇매질에서 벗어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무차별 난타를 당하게 되었다.

“아이구 와 이라요. 임자 도운다꼬 내가 다 데불고 나왔거마는, 에린기 먼 잘못이 있다꼬. 차라리 날 때리소 고마”

빗자루를 빼앗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쉽게 되지 않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허리를 잡고 맴을 돌며 원망의 소리를 내질렀다. 화풀이를 하지 못해 씨근덕거리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더욱 대단한 맷감 제공만 하는 셈이 되었다.

“니년도 별년이가. 이 웬수녀르 종자들아, 그만 싹 씰어 뒈져라. 내 속에 인병 들고 너그 속에 골병들고, 그만 말자”

얼굴이며 목이며 노출 된 양지의 몸은 한 곳도 성한 데 없이 댓가지 회초리에 할퀸 상처가 났고 피부가 찢어진 곳에서는 실거머리처럼 빨갛게 피가 흘러 내렸지만 어머니는 피하지 않고 양지를 감싸 안은 채 맴을 돌았다.

집으로 돌아 온 어머니는 혼이 난 양지의 얼굴을 씻기고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주며 둘러서 있는 딸들에게 뜻 안 한 아버지의 행패를 역성들어 변명을 했다.

“너가부지도 못 나무랜다. 집안이나 형제들이 있으모 힘 모아서 같이 할 일로 혼자 하실라카니 그만 화가 받치서 그란 기다”

양지는 성남언니가 업어주고 귀한 알사탕을 쥐어주며 얼러도 울음 끝을 맺지 못했다. 공포심과 억울함이 되새겨질 때마다 펌프질하듯 자지러지게 울고 또 울고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실수는 아버지가 발을 밟아서 저질러졌지 절대 자신의 고의가 아니었으므로 부당하고 억울하게 당한 구타는 아무리 화난 어른의 행위일지언정 이해되지 않는 부당한 행동인 것이다. 죄 없이 맞으면서 보았던 아버지의 험악한 얼굴은 억울함을 부채질하며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조차 괴물처럼 섬뜩하고 진저리치게 했다. 밤에는 귀신이 된 아버지와 비석들에게 쫓겨 다니는 꿈을 꾸다가 가위눌리고 오줌을 싸기도 했다.

그 후로 비석 모듬의 존재는 까만 휘장을 찢고 드러나는 악령의 집단처럼 오래도록 양지의 기억세계를 어지럽혔다.

양지는 성숙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듯이 눈길로만 천천히 그 주위를 둘러보았다. 됐어. 양지는 으쓱한 자세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그렇다, 굳이 의미 부여만 하지 않는다면 다소의 글이 새겨진 돌덩이의 집단 구역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우물가에 어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빨래를 헹구고 있었다.

“엄마 언제 나왔어? 이리 줘 내가 할께”

“다 했다. 들어가자 고마 저녁 묵그로. 손은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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